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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Oct 18. 2023

[D-75] 아인슈타인도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아

291번째 글

대학생 시절에 양자역학을 잠깐 공부한 적이 있다. 첫 수업에서 교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양자역학을 이해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시작하라고. "이건 아인슈타인이 와도 몰라. 어려운 게 당연한 거고 이해 안 되는 게 당연한 거야." 그 말씀은 내게 아주 인상 깊게 남았다. 그 말 때문일까, 나는 양자역학 공부를 할 때마다 '이건 아인슈타인도 모르는 건데 내가 어떻게 알아?'라는 마음가짐으로 책을 들여다봤었다. 그래서 양자역학은 내가 공부해 본 것들 중 가장 어려운 과목이었는데도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재미있었고 스트레스가 적었던 과목이었다.


그때의 경험 이후로 나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 내 힘으로는 도무지 해결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 문제들을 마주할 때마다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냥 그러려니 하는 마음. 모르는 게 당연하니까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 뒤돌아버렸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시 시작해 보려고 노력했다는 뜻이다. '모르는 게 당연하니까 처음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되짚으며 알아가 보자.' '모르는 게 당연하니까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차분하게 들여다보자.' 아인슈타인도 모른다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다. 이 마음가짐은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


생각해 보면 이 지구상에는 대단한 사람들이 정말 많이도 살았었다. 인류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 수많은 천재들과 영웅들이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런데 그 모든 위인들도, 이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현인들과 학자들과 지식인들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다들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하기는 했지만 그뿐이다. 그들은 해답을 찾은 것이 아니라 본인의 생각이나 깨달은 바에 논리와 근거를 붙여서 이리저리 늘어놓았을 뿐이다. 모든 철학 이론들, 모든 격언들, 모든 시와 이야기들, 그건 전부 이 사람들의 가설일 뿐이지 정답이 아니다.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상황에서든 먹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누군가 정답을 정말로 찾아냈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지금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답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불완전한 사회에서 울퉁불퉁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내가 지금 이 삶을 살면서 이렇게 비틀거리는 것도 당연하다. 헛짚고 빙 돌아가고 다리가 아파 주무르는 그런 삶을 사는 것도 당연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갈팡질팡 헤매고 확신이 없어 두리번거리는 것도 당연하다. 모든 사람이 다 제각기 울퉁불퉁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거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모르는 채로 말이다. 플라톤도 몰랐는데, 소크라테스도 몰랐는데, 공자도 몰랐고 노자도 몰랐고 니체도 몰랐고 하이데거도 몰랐는데, 내가 대체 어떻게 알겠나. 오히려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만일 것이다. 내가 알아야만 한다고 여기는 것은 어리석은 고집이고.


그러니까 그냥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살면 된다. 삶에서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문제를 만날 때마다 "아인슈타인도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아?"라고 한마디 하고 웃으면 된다. 굳이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도 없고, 반드시 나 혼자만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포기 않고 살아가기만 하면 되는 거다. 이 삶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는 어차피 나도 모르고 남들도 다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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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18일,
버스에 앉아 끽끽거리는 소리를 들으.



*커버: Image by Roman Mager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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