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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Nov 06. 2023

[D-56] 한 입 한 입을 음미하듯이

310번째 글

나는 상대적으로 적게 먹는 편이다. 건강을 위해 소식을 하거나 다이어트 때문에 일부러 먹는 양을 줄인 것은 아니다. 그냥 타고나기를 원래 양이 적다. 식당에 가도 1인분을 다 먹지 못하고 남기는 것은 물론이고 공깃밥 하나도 다 비우지 못한다. 이렇게 평소에 적게 먹다 보니 밖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무엇을 어떻게 시켜야 효율이 좋을지 고민이 깊다. 돈도 돈이지만 버려지는 음식이 아까워서다.


더 슬픈 부분은 내가 먹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먹는 것 자체도 좋아하고 새로운 음식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아하고 여러 가지 음식을 다양하게 맛보는 것도 좋아한다. 나는 그런 쪽으로 음식 욕심이 있다. 그래서 식당에 가면 여러 가지를 시켜서 이것저것을 다 맛보고 싶어 진다. 하지만 한 가지 메뉴를 시켜도 다 먹지 못하고 남길 것임을 알기 때문에 그러지 못한다. 그게 너무 아쉽다. 내가 양이 조금만 더 많았다면 메인 메뉴에 사이드도 시켜서 먹을 텐데, 먹고 싶은 것들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고 두세 가지를 모두 시켜서 깨끗이 비우고 나올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밥을 먹을 때마다 늘 하고 있다.


이렇게 먹는 양이 적기 때문에 나는 메뉴를 고를 때 아주 신중을 기한다. 조금밖에 먹지 못한다면, 그 조금의 음식을 최대한으로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한정되어 있는 위의 용량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최대한 맛있는 것을 최대한 맛있게 먹어서 채우고 싶다. 그래서 내게 한 입 한 입은 다 정말 소중하다. 허투루 먹어서는 안 되고 아주 신경을 써서 '잘' 먹어야 한다. 이런 욕망 때문인지 나는 평소에 맛집을 수소문해서 다니기도 하고, 음식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도 하고, 좋은 재료로 만든 좋은 음식을 찾아서 먹으려고 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단 한 입을 먹더라도 최대한으로 음미하고 삼키려고 노력한다.


한 번에 소화할 수 있는 양이 한정적이라는 사실. 한 번의 기회(식사)가 끝나면 다음번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 고민과 선택으로 이루어진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 이런 식사의 특징은 자세히 보면 전부 인생과 닮아 있다. 내게 주어진 고작 백 년 남짓한 이 시간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가득하다. 되돌릴 수 없고 바꿀 수 없기에 더 그렇다. 마음껏 할 수 있는 것도 그다지 많지 않고. 그래서 나는 이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내가 느낄 수 있었던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다. 그게 행복인지 아닌지, 과연 나는 행복한 것인지를 따져 보느라 내가 지금 음미할 수 있는 기쁨들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


맛있는 음식을 한 번에 조금밖에는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식사 시간을 최대한으로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밥을 먹는 그 순간이 아주 소중한 것처럼, 나는 내 인생 역시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내 인생에 주어진 시간들이 아주 조금밖에 없다면 나는 그것을 정말 소중히 여길 것이다. 내게 허락된 행복이 아주 조금밖에 없다면 나는 그것들을 최대한으로 느끼려고 시도해 볼 것이다. 내 인생의 좋은 것들을 더욱 아끼고, 인생의 순간순간들을 충만하게 누리려고 노력하고, 그 모든 순간들을 깊이 음미하고 즐기려고 해 볼 것이다. 인생을 한 입 떠먹을 때마다 섬세하게 맛보고 미소를 지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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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6일,
침대에 누워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Saile Ilyas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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