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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Nov 05. 2023

[D-57] 생각하지 않는 연습

309번째 글

불이 타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마음에 안정감을 준다. 불꽃이 변화무쌍한 모양으로 타올랐다가 잦아들었다가 하며 이리저리 춤을 추는 것을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속이 고요해지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이다.


어제 나는 가족들과 짧은 여행을 와서 모닥불을 바라보며 '불멍(불이 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을 했는데, 이 고요해지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한참을 불 앞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불만 바라보고 있었는데도 지루하기는커녕 나 자신이 따뜻함으로 차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약간 쌀쌀한 공기와 장작이 타닥거리는 소리까지 정말 좋았다.


그렇게 불멍을 하고 돌아와서는 이 불멍이라는 개념 자체가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불은 오래전부터 인간에게 유용한 도구로 쓰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을 텐데, 오늘날의 인간들은 불이 타는 모습을 바라보기를 좋아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면서도 재미있게 느껴졌다. 옛날 선사시대 사람들은 동굴 속에 앉아 타오르는 작은 불씨를 보면서 경외감을 느끼기도 하고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을 텐데 이제 우리는 불을 '힐링'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이.


요즘 불멍, 물멍, 산멍 같은 이런 '멍 때리기'가 유행하는 것은 사람들이 힐링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불, 물, 산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는 것이 힐링이 되는 이유는 아마 사람들이 평소에 멍하니 있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멍하니 있기를 원하지만 그러기 어려운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원래 인간은 멍하니 있지 못하는 생물이다. 우리는 그렇게 진화했다. 뇌가 커지는 방향으로, 생각을 더 많이 하고 더 고차원적으로 하는 방향으로. 그래서 더 많이 생각하고 더 고도로 생각해야 생존에 유리해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가만히 있는 법을 잘 알지 못한다.


게다가 요즘은 너무 많은 정보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라 더욱 그렇다. 고개만 돌려도, 핸드폰만 켜도 너무나도 많은 자극들이 가득하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무자극, 무정보, 무생각에 대한 갈망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그 많은 자극들과 그 자극들이 끊임없이 불러일으키는 수많은 생각들이 우리를 피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멍하니 있고 싶어 하고, 그렇게 멍하니 있기 위해서 불이나 물, 산 같은 매개체들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불멍, 물멍, 산멍, 이런 것들은 일종의 명상인 것이다.


생각하는 연습을 하는 것만큼이나 생각을 하지 않는 연습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시끄러운 세상에서 나를 잠시 격리하는 연습 말이다. 나를 끊임없이 찔러대는 자극에서 벗어나 정적 속에서 차분함과 고요함을 되찾는 일.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는 때로 그런 일들이 필요하다. 



/
2023년 11월 5일,
침대에 기대앉아 유튜브로 장작이 타는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Toa Heftiba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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