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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an 23. 2023

[D-343]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 위하여

23번째 글

며칠 전, 친구에게서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 겨울이 유난히도 따뜻해서 아마도 올해 봄과 여름에는 벌레가 아주 많이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자취 4년 차인 이 친구는 겨울의 추위와 그 해에 벌레가 나오는 정도가 반비례한다는 관계성을 본의 아니게 아주 잘 파악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겨울이 유난히 혹독하면 추위에 시달리며 힘들어하다가도, 올해는 벌레가 덜 나올 거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는 때도 있다고.


오늘 오후 2시쯤 한파 주의보가 내렸다는 내용의 안전 문자를 받았다. 핸드폰에서 사이렌이 울려 대는 통에 처음엔 지진이 난 줄 알고 놀랐는데, 다행히 지진은 아니고 한파를 알려주는 문자였다. 그리고 내가 그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가장 처음 한 생각은 덕분에 올해 벌레가 적어지겠구나, 라는 거였다. 수도관 동파나 결빙이나 동상 환자 같은 걱정이 아니라.


한파 주의보를 보고 안도감을 느낀다는 사실이 웃기기도 했고, 죄책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분명 한파로 인해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텐데 사람 걱정보다는 벌레 걱정을 먼저 했다는 것 때문에 죄책감이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항상 좋은 쪽을 바라보며 기대하는 일과, 최악의 상황을 미리 들여다보는 일을 병행해야 한다는 생각.


한파로 예를 들면, 겨울에 혹독한 추위가 닥치는 일은 당연히 좋은 일이 아니다. 밖에 돌아다닐 때 추운 것부터 난방비나 에너지 문제도 있고, 화재나 동파 사고가 일어나기도 하고, 여러 안전사고들도 많이 일어난다. 또 추운 날씨는 연세가 있으신 어르신들이나 심혈관계 질환을 앓는 사람들,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각별히 주의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미리 준비해 두는 일이 필요하다. 또 내가 해당되지는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미리 생각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돕는 일도 필요하다.


그리고 한파의 단점을 보고 걱정하는 동시에 장점을 생각하는 일도 필요하다. 혹독한 추위가 닥치더라도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것은 아니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유난히도 겨울이 추우면 이듬해 벌레로 인한 충해가 적어진다는 장점도 있다. 이런 현실적이면서 긍정적인 사고는 겨울을 견디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사고방식은 '이 겨울도 언젠가 끝이 나고 따뜻한 날씨가 찾아오겠지'라는 낙관적인 기대와는 조금 다르다. 그보다는 '추운 겨울' 자체를 파헤쳐 보면서 좋은 점을 찾아내는 것에 가깝다고나 할까. 낙관하며 희망을 갖는 것도 중요하고 이렇게 사건의 좋은 쪽을 바라보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인생을 살아갈 때 언제나 좋은 쪽만 바라보고 살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사건'에는 동전처럼 양면이 있다. 나쁜 점이 있다면 좋은 점도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나쁜 점을 미리 생각하고 대비하는 동시에 좋은 점을 때로 상기하며 마음이 너무 부정적인 방향으로 기울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복잡하고 다면적이며 얽히고 설킨 우리네 인생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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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23일,

식탁 의자에 앉아서 유튜브로 오르골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kinkat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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