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 Nov 17. 2023

[D-45] 작동 모드로 돌입하기

321번째 글

갈수록 아침에 눈을 뜨기가 어려워진다. 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벗어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아마 날이 급격히 추워진 탓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밤새 둘둘 말고 잔 이불 안의 따끈하게 데워진 공기주머니 속에 있다가 싸늘한 바깥 공기를 마주하려니 쉽지가 않다. 그리고 겨울이 되니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인지 점점 더 체력을 많이 쓰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같은 일을 해도 더 빨리, 더 쉽게 피로해지곤 한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전보다 더 힘들어진 게 아닌가 싶다.


오늘 아침도 도저히 눈을 못 뜨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잠에서 깼다. 너무 피곤해서 눈두덩이가 아파오는 듯한 느낌이었고 몇 시간은 더 누워 있어야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일어나야지, 일어나야지 생각하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이불 속에서 밍기적거렸다. 머릿속에 어제 세워둔 계획이 떠다녔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헬스장에 갔다가 카페까지 걸어가 커피를 사서 돌아와 일을 시작한다는 계획. 어젯밤의 나는 그 계획을 위해서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다. 그 계획을 생각하자 마음이 초조해졌다. 십여 분이 지나면 더 이상은 그 계획을 따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누운 채로 고민하다가 일단 일어나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일단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 보고 결정하자고. 너무 피곤하면 운동과 산책을 포기하고 집에서 커피를 타 먹는 거고, 할 수 있을 것 같으면 어제의 계획대로 하자고.


나는 그러기 싫은 마음과 싸우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나는 몇 분도 되지 않아서 조금 전에 느꼈던 그 피로를 더는 느끼지 않게 되었다. 아팠던 눈두덩이도 괜찮아졌고 무거웠던 몸의 무게도 점차 줄어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바뀐 것이다. 일어나기 전에는 정말 못 일어날 것 같았는데, 막상 일어나 보니 해볼 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전원 스위치를 켜고 끄는 일 같았다. 세탁기는 전원이 꺼져 있을 때는 그저 묵직한 쇳덩이일 뿐이다. 어떤 일을 해낼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전원 버튼을 켜면 마법처럼 작동해서 깨끗한 빨래를 뱉어낸다. 러닝머신은 전원이 꺼져 있을 때는 기묘하게 생긴 구조물일 뿐이다. 그 구조물로 뭘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전원을 켜는 순간 러닝머신은 작동한다. 나 자신도 이런 기계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전원 버튼을 켜고 끄는 것처럼, 오늘 아침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꺼져 있던 전원 버튼을 누른 거라고. 그래서 금세 작동 모드로 돌입한 거라고 말이다.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는 마냥 피곤하고 만사가 귀찮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다. 하지만 막상 자리에서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고 나면 하루는 여느 때와 같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하게 되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많은 일들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 보면 벌써 해가 져 있다. 도저히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았던 하루는 어느새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일어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내 몸과 내 마음이 알아서 익숙하다는 듯 작동 모드로 들어갈 테니까.



/
2023년 11월 17일,
버스에 앉아 엔진이 울리는 소리 들으.



*커버: Image by PlanetCare from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D-46] 칠전팔기의 낙관주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