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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Nov 16. 2023

[D-46] 칠전팔기의 낙관주의

320번째 글

칠전팔기(七顚八起)라는 말이 있다.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난다는 뜻으로, 실패를 거듭해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태도를 빗대어 이르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내가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이어서도 아니고, 그런 인생을 살아와서도 아니고, 내가 결코 가질 수 없는 태도여서 그런 것도 아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적당히 노력하고 적당히 넘어지고 적당히 일어난다. 때로는 포기하고 때로는 다시 시도한다. 여덟 번까지는 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넘어졌다 일어나는 경험이 무엇인지도 알고 어떤 면에서는 꾸준하고 어떤 면에서는 절망이 빠른, 그런 보통 사람이다.


내가 이 말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나는 이 말에 담겨 있는 낙관주의를 좋아한다. 일곱 번 넘어진 사람은 일곱 번 일어나는 것이 논리에 맞다. 여덟 번째로 일어난다는 것은 뭔가 이상하다. 넘어지지 않았는데도 한 번 일어났다는 건. 그러면 이 '넘어지지 않았는데 일어난 경험'은 대체 뭘까? 나는 그게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가며 받아 온 타인의 친절과 호의를 통해 좋은 결과를 얻어낸 경험을 의미하는 거라고 해석하고 싶다. 전혀 좌절을 맛보지 않고도 원하는 것을 얻었던 경험 말이다. 그런 경험이 적어도 한 번은 있으리라는 것, 그리고 그 경험이 일곱 번의 넘어짐을 경험하고도 한번 더 일어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줄 수 있으리라는 것. 나는 그 점이 좋다. 이 여덟 번째의 일어남에 담긴 삶에 대한 인식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이 말이 낙관적이라고 느껴지는 건 일곱 번이라는 횟수 때문이기도 하다. 일곱 번 넘어진 사람은 이미 여섯 번이나 일어난 경험을 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첫 번째로 넘어졌을 때 삶은 그 사람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두 번째로 넘어졌을 때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에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이 일어날 생각만 있다면 삶은 기꺼이 그 사람을 일으켜 준다. 삶은 누군가를 일곱 번 넘어지게 하고 나면 여덟 번째에는 반드시 일어날 기회를 준다. 칠전팔기가 가능하다는 건 어쩌면 이 삶이 그렇게까지 고되지 않고 이 세상이 그렇게까지 힘든 곳은 아니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어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소리꾼 이자람의 판소리 공연을 보고 왔다. 공연 도중 이자람은 관객을 바라보며 이런 말을 건넸다. "세상은 나쁜 걸 5개를 주면 좋은 걸 6개를 주더라고요." 가슴을 파고드는 명창의 소리만큼이나 그 말은 내게 위안을 주었다. 나는 그렇게 믿으면서 살고 싶다. 다섯 개의 나쁜 것이 있는 세상에는 반드시 여섯 개의 좋은 것이 있다고. 삶은 일곱 번 나를 넘어뜨리고 여덟 번째로 나를 일으켜 준다고 말이다.



/
2023년 11월 16일,
버스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



*커버: Image by Marek Piwnicki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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