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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Nov 20. 2023

[D-42] 미묘한 아쉬움들

324번째 글

때때로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미묘한 아쉬움들이 있다. 큰 아쉬움이 아니고, 후회할 만한 일이거나 속상한 일도 아니고, 그저 미묘하게 기쁨을 깎아 먹는 작은 아쉬움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버스를 놓치는 건 큰 아쉬움이다. 그런데 버스를 제시간에 타려면 지금 길을 건너야 해서 초록불이 깜빡이는 횡단보도를 뛰어서 건넜는데, 버스가 예정보다 약간 늦게 도착해서 다음 초록불에 길을 건넜어도 충분했을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건 미묘한 아쉬움이다. 또 지하철 문이 닫히기 전에 타려고 달려가서 문이 닫히기 전에 아슬아슬하게 잘 탑승했는데, 문이 한 번 더 열려서 굳이 이렇게 급하게 달려올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도 미묘하게 아쉽다.


아니면 이런 경우도 있다. 기차표나 영화표를 예매하고 나서, 내가 예매한 자리보다 약간 더 좋은 자리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 표가 매진이라 예매하지 못하게 되는 건 큰 아쉬움이다. 그런데 더 좋은 자리가 있었는데 놓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건 그렇게까지 아쉽진 않지만 어딘가 못마땅하다. 온라인 쇼핑몰의 '품절 임박' 표시를 보고 재빨리 클릭해서 급하게 구매를 했는데, 몇 시간 후에도 계속 '품절 임박' 표시가 남아 있어서 사실은 아직 품절이 되려면 멀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도 미묘한 아쉬움을 남긴다. 원하는 물건이 품절이라 사지 못하게 되는 경우나, 구매한 물건의 품질이 좋지 않은 경우는 당연히 많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결과가 나쁘진 않지만 미묘하게 아쉬운 경우는 내가 그다지 손해 본 것이 아닌데도 괜히 손해 본 것 같은 기분을 받게 된다.


이런 미묘한 아쉬움들을 잘 들여다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기쁘지 않은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예시들에서 나는 버스를 타서, 지하철을 타서 기쁘다. 표 예매에 성공해서, 물건을 잘 구매해서 기쁘다. 그러니까 이 미묘한 아쉬움들은 큰 기쁨에 따라오는 작은 아쉬움들이다. 기쁨이 있기에 존재하는 아쉬움인 것이다. 나쁜 일도 아니고 슬픈 일도 아니고 손해 본 일도 아니고, 그저 100% 기쁠 일이 95% 기쁜 일이 되게 만드는 사소한 아쉬움들 말이다. 그러니까 억울한 기분이 들긴 해도 그렇게까지 억울해할 필요는 없다.


또 이런 아쉬움을 느끼는 게 불안과 초조함을 느끼거나 전전긍긍하게 되는 것보다는 낫다. 만약 내가 횡단보도를 뛰어 건너지 않았다면 나는 길 건너편에서 언제 버스가 오는지를 신경 쓰며 초조해했을 것이다. 버스가 도착하기 전에 초록불이 켜져서 길을 건널 수 있게 되기 직전까지 나는 버스를 못 탈까 봐 걱정하면서 서 있게 된다.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것보다는 그전에 길을 건너서 미묘하게 아쉬운 기분을 느끼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불안과 미묘한 아쉬움을 저울질하면 언제나 불안 쪽이 더 무거울 수밖에 없으니까.



/
2023년 11월 20일,
버스에 앉아 이런저런 소리들을 들으.



*커버: Image by BBiDDac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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