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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Nov 23. 2023

[D-39] 결점투성이

327번째 글

사람이라면 누구나 결점을 안고 살아간다. 우리는 누구나 조금씩 찌그러져 있다. 완벽하게 곧고 모난 데 없이 둥근 것 같아 보이는 사람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패인 부분이나 튀어나온 부분이나 금이 간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 적당히 찌그러진 삶에서 적당히 찌그러진 나를 안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 개성 있는 찌그러짐들이 우리를 우리답게 만들어 준다.


나도 결점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내게는 수많은 결점들이 있다. 나는 찌그러진 나를 끌어안고 나를 다듬는다. 날카롭게 튀어나와 나를 아프게 찌르는 부분은 갈아내려고 애쓰고, 안쪽으로 홈이 파여 움푹 들어가서 계속 신경이 쓰이게 만드는 부분은 조금씩 펴 가면서. 또 어떤 찌그러짐들은 그냥 내버려 두기도 하고, 어떤 자국과 흉터들은 잊어버리기도 하면서. 나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나는 이렇게 결점투성이라는 내 특징에서 인간미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이 결점 있는 존재이기에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있고, 배려할 수 있고, 도움과 호의를 베풀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내게 똑같이 그렇게 해 주는 데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내 결점들이 자랑스럽지는 않다. 나는 오히려 내가 결점투성이라는 점이 창피하다. 너무나도 부끄럽고 감추고 싶고 인정하고 싶지 않고 고치고 싶다. 고치는 데에 쓰는 노력이 너무나도 힘겨워서, 그저 눈을 감았다 뜨면 내가 쫙 펴져 있기를 바라기도 한다. 처음부터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결점들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말이다. 그렇게 아무런 결점도 없는 완벽한 인간이 되어 완벽한 삶을 누리는 상상도 종종 떠올린다.


결코 자랑스럽다고 할 수는 없는 결점들이지만, 나는 내가 이 결점들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은 자랑스럽다. 내가 이 결점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부분들은 그런 것들이다. 내가 스스로 결점이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했다는 사실. 내가 결점투성이인 사람이라고 모두가 볼 수 있는 공간에 이렇게 털어놓을 수 있다는 사실. 나 자신을 억지로 더 많이 깎아내리거나 무리해서 감추려고 하지 않고, 나 자신에게 상처가 되는 농담의 소재로 삼지도 않으면서, 진지하게 내가 결점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결점들을 고치거나 좋은 쪽으로 돌려 활용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 나는 그게 자랑스럽다.


나는 결점투성이다. 여느 인간처럼 나는 결점을 갖고 있다. 마치 당신처럼, 나는 결점투성이인 사람이다.


이렇게 적을 수 있다는 사실이.



/
2023년 11월 23일,
소파에 앉아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음악 소리를 들으.



*커버: Image by T. Selin Erkan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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