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 Nov 25. 2023

[D-37] 사소한 행복

329번째 글

칼에 찔리는 상처보다 작은 바늘에 찔리는 상처가 더 아프다고들 한다. 일상 속에서 겪는 가벼운 다툼이나 사소한 실망, 별 것 아닐 수도 있는 작은 아픔들이 더 큰 고통을 줄 수 있다고 말이다. 나는 이 말에 공감하는 편이다. 그리고 이 말의 정반대에도 공감한다. 가끔은 아주 커다란 행복보다도 작고 사소한 일상 속의 행복이 더 나를 '살 맛 나게' 해준다는 말에.


어제는 오랜만에 연차를 내고 집에서 쉬었다. 이 귀한 휴가를 뭘 하면서 보내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나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로 휴가 당일 아침을 맞았다. 아침에는 적어도 할 일이 있었다. 간단한 검진을 하러 병원에 갈 예정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일단 고민은 병원에 가서 하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한참 동안 고민한 것이 무색하게, 검진이 끝나고 근처 카페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곧장 집으로 향한 이유 첫 번째는 날이 너무 추워서 도저히 어딜 가서 뭘 할 엄두가 안 났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집에서 편안하게 쉬면서 휴가를 보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영하의 날씨와 달리, 보일러가 들어오는 집 안은 따뜻했다. 안팎의 온도차 때문인지 저절로 졸음이 왔다. 나는 수면 잠옷으로 갈아입고 극세사 담요를 덮고 햇빛이 잘 드는 거실 소파에 누웠다. 그 자세, 그 온도, 그 촉감, 그 졸음, 그 여유, 모든 게 완벽했다. 쏟아지는 햇빛 때문에 눈이 부셨지만 그 눈부심마저도 좋았다. 나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고 2시간 뒤에 눈을 떴다. 최근 들어 가장 편안히 잠든 2시간이었다. 그저 잠을 잔 것뿐이었는데 너무나도 행복했다. 아직도 그 느낌을 떠올리면 슬며시 웃음이 떠오르고 마음이 설렐 정도로.


그런 사소한 행복들이 있다. 내 인생을 바꿔놓지는 않지만 나를 살짝 미소 짓게 해 주고 삶을 견딜 만하게 해주는 일상 속의 작은 행복들. 포근한 낮잠,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은 좋아하는 노래, 기지개를 쭉 켰을 때 몸이 시원해지는 감각, 샤브샤브를 먹고 난 뒤 마무리로 먹는 볶음밥의 첫 한 입, 그런 것들.


어제는 별다른 것을 하지 않고 그냥 집에서 쉬었지만 그 2시간의 낮잠으로 인해 행복했다. 밖에 나가서 영화를 보거나 쇼핑을 하거나 다른 무언가를 했었어도 분명 즐거웠을 것이다. 하지만 어제 내가 느낀 그 포근함, 그 햇빛, 그 자연스러운 잠기운, 별 것 아닌 그저 평범한 낮잠이 주는 그 사소한 행복만큼 나를 살아 있게 해 주었을지는 모르겠다. 그만큼 어제의 그 경험은 소중했다. 앞으로 몇 달은 단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슬며시 미소를 지을 수 있을 만큼.



/
2023년 11월 25일,
소파에 기대 누워 대화 소리를 들.



*커버: Image by Sarah Brown from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D-38] 알지만 모른 척 태연할 수 있는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