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왜 도덕인가 - 마이클 샌델

2025년 독서 챌린지, 여덟 번째 책

by 슬로

지난번에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남긴 글에서 이 책은 답을 주거나 특정한 견해를 주장하기보다는 계속해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관련 링크) 그래서 나는 <왜 도덕인가>도 답을 주는 책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다양한 도덕의 개념과 의견을 알려주고 도덕이란 과연 무엇인지를 나 스스로 고민해 보도록 만드는 책일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왜 도덕인가>는 질문을 주는 책이 아니라 답을 주는 책이다. 제목 그대로 '왜 도덕인지'에 대해서, 왜 도덕이 현대 정치에서 중요한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 그래서 이 책은 다양한 의견을 소개하는 책이라기보다는 정치는 도덕을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저자의 핵심 주장에 대한 근거 자료에 가깝다. 책 제목이 <도덕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왜 도덕인가>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왜 도덕인가>는 <정의란 무엇인가>보다 더 어렵다. 고민해야 될 부분이 하나 더 늘었기 때문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그동안 사람들이 정의가 무엇이라고 생각해 왔는지를 다양한 사례와 함께 소개해 주는 책이었기 때문에 책 속의 사례들,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생각들에 대해서만 고민하면 되었다. 예를 들어 트롤리 문제라면 다섯 명을 구하기 위해 한 명을 죽여도 정당한지만을 고민하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머리가 복잡했던 것과는 별개로 책 자체는 아주 쉽게 읽히는 편이었다. 하지만 <왜 도덕인가>는 저자의 특정 주장을 담고 있기 때문에 제시된 사례에 대한 고민 외에도 그 주장의 타당성을 추가로 고민해야 했다. 내가 저자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느끼는지,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는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떤 이유 때문인지, 이런 생각들에 골똘히 잠겨 있느라 <왜 도덕인가>는 상대적으로 페이지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또 한 가지 어려움은 이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례가 적게 나온다는 점 때문이었다. 당연한 것이지만, 정치철학과 관련된 개념 및 주장들은 사례를 들어서 이야기할 때 훨씬 이해하기 편하다. 철학을 철학의 언어로 이야기하면 어렵기도 하거니와 어쩐지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이론처럼 느껴진다. 철학을 현실의 언어로 이야기하면 거리감이 훨씬 가까워진다. 그리고 철학을 현실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방법은 바로 사례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정의란 무엇인가> 때와 마찬가지로 사례를 통해 이야기하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단 중간중간 사례 없이 철학 이론을 설명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들에서 읽는 속도가 느려지는 것을 느꼈다. 이 책이 더 어렵다고 느껴진 데에는 아마 그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상대적으로 어렵다고 느껴진 것과는 달리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의견은 아주 명확하다. 저자는 도덕을 제외하고는 깊이 있는 정치적 논쟁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그 관점에서 정의는 도덕과 무관해야 한다는 통념을 비판한다. 도덕이 부재하는 시장 논리에 대한 비판과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한 설파도 함께 이야기한다. 그래서 명쾌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마지막 10페이지 정도에서 주장한 내용을 더 많은 사례와 근거를 가지고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는 느낌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시장 논리에 대한 비판이었다. 시장 논리에 따르면 무언가를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파는 게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시각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팔 수 있는 것과 팔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팔 수 없는 것을 단순히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파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으며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미친다고 말이다. 이 '팔 수 없는 것'이라는 개념을 나는 꽤나 자주 떠올리게 되었다. 저자가 예시로 들고 있는 '팔 수 없는 것'들은 장기 매매와 성매매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못되었다고 인식하고 있는 대상이었지만, 나는 지금 당연하다는 듯이 팔리고 있는 것들이 과연 '팔 수 있는 것'이 맞는지를 고민하곤 했다.


예를 들면 배달 음식 같은 것. 배달 음식은 현대인의 식사를 아주 간편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현대인의 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 지목당하기도 한다. 예전에 본 식생활 관련 다큐에서도 현대인의 음식 섭취가 너무나도 쉬워져서 과다하게 칼로리를 섭취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단 스스로 만들어 먹어라."라는 메시지가 나왔었다. 우리는 배달 음식을 구매하면서 '요리를 해서 집 앞까지 가져다주는 서비스'에 대가를 지불한다. 배달 음식이 시장 논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팔리면서 우리가 잃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아주 사소한 소비에서부터 이런 고민을 하게 되었다.


도덕은 요즘에는 너무나도 진부하고 고리타분한 것으로 여겨지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정치와 사회는 물론 경제와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영역은 도덕적 판단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일까, 책을 덮으면서 나는 'Under Pressure'의 노래 가사 한 구절을 떠올렸다.


왜냐하면 사랑은 너무나도 진부한 단어이지만,
사랑은 밤의 끝자락에 선 이들을 돌볼 수 있도록 하기에.
그리고 사랑은 스스로를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놓기에.

- Under Pressure(Queen & David Bowie) 중에서.


도덕도 비슷하게 이야기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도덕은 너무나도 진부한 단어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놓기에 중요하다고.




*커버: Unsplash의 David van Di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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