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독서 챌린지, 열두 번째 책
3월 초, 엘러리 퀸의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를 읽었다. 추리소설을 읽은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래서인지 내내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잊고 있었던 '추리소설을 읽는 감각'을 되찾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 책을 다 읽고 원래 있던 자리에 돌려놓으며, 나는 책장에 나란히 꽂힌 엘러리 퀸 국가명 시리즈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대부분 내가 예전에 손에 땀을 쥐고 읽었던 책들이었기 때문에 내용이나 범인, 사용한 트릭 등이 어렴풋이라도 기억이 났다. 그런데 딱 두 권, <미국 총 미스터리>와 <스페인 곶 미스터리>는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기억을 더듬기 위해 이 책들은 다시 읽어 보기로 했다. 더 앞 시리즈인 <미국 총 미스터리>부터.
그런데 막상 책을 펼치고 나니 왜 <미국 총 미스터리>의 내용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았는지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서부극에 별로 흥미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엘러리 퀸은 이 책의 배경으로 카우보이, 권총, 로데오 등을 등장시켜서 서부의 냄새를 짙게 풍기게 만들어 놓았다. 서부극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분명 열광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냄새는 나를 매료시키지는 못했다.
서부극을 딱히 싫어하는 건 아니다. 다만 다른 장르에 비해 내 관심사에서 멀 뿐이다. 케이블 채널을 통해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존 웨인의 출연작들을 여러 편 보았지만 그다지 마음이 끌리지는 않았다. 남성 중심의 마초적인 분위기도 그다지 취향이 아니었고, 폭력을 미화하고 동경하는 연출, 종종 등장하는 인종차별적인 내용도 불편함을 남겼다. '개척'이라는 개념 자체도 마찬가지였고. 여러 이유 때문에 서부극의 이미지에 그다지 이끌리지 않다 보니 이 책의 배경과 주요 사건 자체도 크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래도 <미국 총 미스터리> 자체가 재미가 없었던 건 아니다. 엘러리 퀸은 언제나 엘러리 퀸이다. 마지막까지 단서를 숨겨 놓는 연역 추리 방식도 그대로고 매력적인 캐릭터도 그대로다. 특히 이번에는 퀸 경감님이 비중이 크게 나오셔서 좋았다.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에서는 퀸 경감님이 거의 나오지 않으셔서 살짝 아쉬웠었기 때문에 경감님이 코담뱃갑만 여셔도 괜히 반가웠다. 원래 엘러리 퀸 시리즈는 엘러리와 퀸 경감님이 투닥거리는 장면들을 보는 맛도 있는데, <미국 총 미스터리>에는 그런 부자간의 케미스트리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많이 나와서 좋았다.
그런데 책을 읽는 동안 나를 죄책감에 시달리게 만들었던 것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폭력'에 대한 내 태도였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폭력과 범죄에 흥분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발견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또 고전 추리소설 특성상 폭력과 범죄는 대상화되기 마련이다. 현실에서 벗어난 흥밋거리로 존재하고 낭만화된다. 그 폭력이 얼마나 끔찍한지나 폭력을 발생시키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 같은 건 뒷전으로 밀려난다.
<오즈>와 <호미사이드> 등의 쇼러너인 톰 폰태나는 날것 그대로의 폭력을 드라마에 그려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폭력을 묘사할 때는 발생한 폭력 자체뿐만 아니라 그 폭력이 발생한 원인과 결과, 폭력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 등을 함께 그려내야 한다는 말을 했었다. 그러나 엘러리 퀸 시리즈를 비롯해서 내가 좋아하는 고전 추리소설에는 이런 부분이 대체로 부재해 있다. 범죄는 사회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것으로 축소된다.
물론 나는 여전히 추리소설을 사랑한다. 언제까지나 그럴 것이다. <스페인 곶 미스터리>도 읽을 것이고, 앞으로도 더 많은 추리소설을 읽을 것이다. 추리소설에서 더 핵심이 되는 부분은 폭력이나 범죄 자체가 아니라,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논리와 서스펜스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내가 추리소설을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들 때문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예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지점들을 이번에 새롭게 고민해 보게 되었다. 그 점에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전과는 다른 인식과 시선으로 책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 말이다.
*Unsplash의 Andreas Rasmus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