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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Feb 10. 2023

[D-325] 우주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갔으면

41번째 글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게 되는 시점은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부터라는 말이 있다. 어린 시절에는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부모님은 나를 위해서 존재하고, 선생님과 친구들도 나를 위해서 존재한다. 세상의 중심인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내 주변인으로서의 역할을 위해서 태어났다. 모든 관계와 사물들이 모두 나를 통해서 정의된다. '내 엄마'이고 '내 친구'이며 '내 교실'이고 '내가 사는 동네'인 거다. 내가 주인공이고 나머지는 모두 엑스트라이며 세트인 것처럼 인식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스스로가 늘 주인공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의 삶에서는 내가 주인공이고 내 친구들이 엑스트라지만, 그 친구의 삶에서는 내가 엑스트라라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중요한 정도는 내 옆에 앉은 낯선 사람이 중요한 딱 그만큼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나는 세상의 중심이 아니고 그저 세상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 중 한 가지일 뿐이며, 그렇게까지 특별하거나 중요한 존재도 아니라는 이 깨달음을 통해서 우리는 유년기와 결별하게 된다.


이제 나는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온 우주가 나를 위해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 내가 정말로 이 세상의 주인공이 맞아서, 나의 이야기가 쓰이기 위해서 세상 모든 게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바라기만 하면 다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 말이다. 아주 이기적이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지만 때때로 그런 생각이 드는 것만은 어쩔 수 없다.


이런 나의 어리고 유치한 마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노래가 하나 있다. 뮤지컬 <나인(Nine)>에서 주인공 귀도가 부르는 'Guido's Song'이라는 노래이다.


I would like the universe to get down on its knees
And say, "Guido, whatever you please
It's okay even if it's impossible we'll arrange it"

이 우주가 내게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했으면 좋겠어
"귀도,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도 좋아.
만약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어떻게든 되게 해 줄게."

- Guido's Song 중에서


정말로 우주가 나에게 이렇게 말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네가 하고 싶다면 그것이 이루어지게 해 줄게, 라는 말처럼 달콤한 게 또 있을까! 나는 아직도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내게 엄청난 초능력이 생기거나 <브루스 올마이티>의 주인공처럼 신의 능력을 갖게 되는 상상을, 그래서 내가 원하는 일들을 마음껏 이루어 내는 상상을 하면서 즐거워한다. 이런 걸 보면 아마 나는 아직 완전히 어른이 되지는 못했나 보다.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유년기의 미숙한 마인드를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한 모양이다.


하지만 상상은 그저 상상일 뿐이다. 어쩌면 온전한 어른이 되었기 때문에 이런 상상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상상으로나마 욕망을 채우려고 하는 것일지도.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어린아이를 하나씩 가지고 있지 않은가. 우주가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또는 실제로 그렇게 돌아간다고 믿고 있는, 그런 어린아이를 말이다. 이 아이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가끔씩은 이렇게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이고 허무맹랑한 상상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

2023년 2월 10일,

식탁에 앉아서 유튜브로 <나인> 앨범을 들으며.



*커버: Image by Yatheesh Gowda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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