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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Feb 11. 2023

[D-324] 나를 정의하는 방식으로 말하지 않기

42번째 글

나는 군말을 좀 많이 하는 편이다. 사람들이랑 같이 있을 때 굳이 하지 않아도 되었을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야 만다. 내가 대화 주제로 나오면 특히 더 그렇다. 전에도 이야기한 적 있듯이 (이전 글 참고) 나는 칭찬을 듣는 걸 잘 못하는데, 일반적으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주제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경우는 그 사람을 칭찬할 때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게 좋은 말을 해 주면 나는 민망함을 견디지 못하고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나를 깎아내리는 말을 하고 만다.


칭찬을 들을 때가 아니더라도 내가 나에 대해서 말하는 방식 자체가 좀 그런 편인 것 같다. 나는 나를 내 멋대로 정의 내려서 표현하는 습관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나는 옛날 락밴드나 고전 배우들을 좋아하는데, 이 점을 언급할 때 그냥 "제가 60~70년대 락 음악을 좋아해요."라고 말하면 되는 걸, 굳이 "제가 약간 올드한 사람이라서요."라고 표현하는 것. 이렇게 굳이 '내가 이러저러한 사람이다'라고 정의하는 방식으로 말을 하게 된다. 예전에는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요즘 들어 깨닫게 되었다.


나를 이렇게 쉽게 정의해 버리는 것은 크게 두 가지 문제를 가져온다. 첫 번째 문제는, 내가 나를 함부로 판단하면서 스스로를 틀 안에 가둬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언어에는 생각보다 아주 강력한 힘이 있다. 그래서 내가 나를 어떠하다고 판단해 버리는 순간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 되어 버린다. 물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인지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일상적으로 나를 정의해 버리면 문제 해결을 위해 나아가기보다는, 그냥 내가 나 자신을 그렇게 생각해 버리는 데에서 그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정당화가 되어 버리기도 한다.


또 두 번째 문제는,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판단할 틀을 쥐어 주게 된다는 점에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누군가에게 나를 '소심한 사람'이라고 정의하면서 이야기를 하면, 그 사람은 나를 언제나 '소심한 사람'으로 보게 될 것이다. 나의 모든 행동과 태도가 그 '소심한 사람'이라는 틀 안에서 판단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다양한 모습을 보지 못하고 틀에 박히고 편견에 갇힌 모습만을 보게 될 수 있다. 나는 입체적이고 다면적인 존재인데, 굳이 내가 나 스스로를 틀에 찍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래서 앞으로는 나를 함부로 정의 내리지 않기로, 일상 속에서 나를 이렇게 한 마디로 정의하는 방식으로 말하지 않기로 노력해 보려고 한다. 정의를 내리는 대신에 그냥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방식을 취하려고 한다. 아주 간단한 표현이더라도 말이다. 예를 들면, "제가 길치예요."라고 하는 대신에 "제가 여기까지 올 때 길을 헤맸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더 건강한 표현 방법인 것 같다. 내가 늘 길을 헤맨다는 말을 하고 싶다면, "제가 평소에 길을 자주 헤매는 편이에요." 정도로 말하면 된다. 나를 '길치'라고 정의하는 대신에. 마찬가지로, "제가 컴맹이라서요." 대신에 "이런 걸 사용하는 데에 조금 서툴어요."로, "제가 알못이에요." 대신에 "이 분야는 잘 몰라서요. 처음 배웠네요."라고 말하는 거다.


나는 수많은 장점과, 수많은 단점과, 장점이면서 단점이기도 한 특징들과, 좋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운 성질들로 이루어져 있다. 한 마디로 정의 내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 평소에 함부로 나를 정의하는 방식으로 말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쉽게 정의 내리고 판단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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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11일,

소파에 앉아서 TV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Olivier Girard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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