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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Mar 12. 2023

[D-295] 최상급 표현의 함정

71번째 글

'세계 7대 불가사의' '세계 4대 뮤지컬' '일본 3대 절경'과 같은 표현을 우리는 종종 사용한다. 우리는 순위를 매기는 것을 좋아한다. 상위 10%, 상위 5등, TOP 10을 정하는 것을 좋아하고, 1등과 2등과 3등을 가르는 것을 좋아한다. 경쟁하고 싶어 하고 경쟁에서 이기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에서 나온 습관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렇게 순위를 매기고 줄세우기를 하는 것은 때때로 끝없는 비교의 늪에 우리를 빠트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 무엇인지 뽑는다고 해 보자. 그러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토너먼트 경쟁을 벌일 것이다. 이 책을 더 좋아하는지 저 책을 더 좋아하는지를 가늠해 보면서 계속 저울질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이유를 하나씩 따져 보면서 말이다. 이렇게 나는 책들을 한 권 한 권 평가할 테고,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 때까지, 그래서 딱 한 권을 가려낼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야."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수십 번의 내적인 비교를 거쳐야 한다.


그래서 이런 최상급 표현들은 나를 피곤하게 만든다. 일상 속에서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습관적 줄세우기는 나를 피곤하게 만든다. 이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 내 마음속에서 나도 모르게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은 내게 은근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더 슬픈 점은, 이렇게 최상급으로 말하기 위해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단점을 계속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작품들을 늘어놓고 무엇이 더 좋은지 비교를 하다 보니 내가 왜 이 작품을 좋아하는지에 집중하기보다는 이 작품의 부족한 부분들을 거듭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교를 계속하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의미가 퇴색되어 버린다. 비교하기 전까지는 그냥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었던 작품은, 비교를 마치고 나면 '내가 좋아하기는 하지만 다른 책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2등이나 3등에 머무르는 정도에 불과한 책'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래서 이런 줄세우기 평가가 끝난 이후엔 예전처럼 작품을 열렬히 좋아하지 못하게 된다.


게다가 이런 줄세우기가 그다지 정확한 것도 아니다. 어떤 객관적인 지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대체로 최고를 뽑은 경쟁의 승자는 내 그때그때의 감정에 달려 있다.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언제든지 의미 없어질 수 있는 것이다. 내 개인적인 베스트를 꼽는 것이 아닐 때도 그렇다. 사실 '세계 n대'라는 수식어가 붙는 말들도 객관적이지 않기란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예를 들어 '세계 4대 뮤지컬'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한국에서만 쓰이는 표현이고, 실제로는 카메론 매킨토시가 제작한 웨스트엔드의 메가뮤지컬 4편을 묶어서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 뮤지컬들이 다른 뮤지컬에 비해 더 좋은 작품인 것도 아니고, 더 인정받는 작품인 것도 아니다. 어차피 좋은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은 개인의 취향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최상급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일상 속에서 함부로 '가장' '제일' '최고로' 같은 표현을 남발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를테면 나는 '인생 영화'라고 표현하기보다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나 '내 인생관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감독'이라고 표현하기보다는 '이 감독의 영화는 거의 다 챙겨볼 정도로 정말 좋아하는 감독'이라고 풀어서 설명하고 싶다. 평가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가치를 서로 비교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

2023년 3월 12일,

소파에 앉아서 창 밖의 빗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Elena Mozhvilo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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