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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자까 Oct 04. 2022

먹기 위해 일어난다

왜 일어나느냐,라고 누군가 물었을 때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왜 당연한 것을 묻느냐?

-눈이 떠지니 일어난다.

-먹고살려고 일어난다.

-배고파서 일어난다.

-새벽의 고요함이 좋아서 뭘 먹기가 좋다.


언제부터였던가 물건에 대한 욕심이 많이 생겼다. 할인하면 쟁여 놓기가 일상이 되었고 집엔 내 물건보다 남편의 물건이 가득하다. 그 물건들은 보통 먹는 것들이다.

까르보 불닭라면에 빠졌을 때도 하나를 까먹고는 맛있어서 한 박스를 주문해서 집에 두었다.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에 빠졌을 때도 폰타나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 소스를 박스채로 사서 진열해두었다.


결과는 어떠한가. 몇몇 식품은 남편의 도움으로 해결했지만 유통기한 지난 파스타 소스를 음식물 쓰레기에 그대로 버리던 것을 기억하는가. 다 먹지 못해 남은 새 필라델피아 크림치즈를 헐 값에 당근으로 팔았던 지난날을 기억하는가.


갖가지 식재료에서 다양하고 자극적인 맛에 혀가 매료되어 끌리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 내가 먹는 음식의 ‘맛있음’은 어디서 나오는가 생각해보자. 그래, 어제 먹었던 홍 가리비를 생각해보자.



홍 가리비를 2kg나 사서 하루 종일 홍 가리비만 씻기고 굽고 삶았던 어제 하루를 기억해보자. 행복했는가. 이제 가리비 껍데기만 봐도 기겁하지 않는가.


다시 현재 내가 먹는 음식의 ‘맛있음’은 어디서 나오는가 생각해보자. 지금 이 음식이 맛있는 이유는 입맛에 맞게 맛있어서다. 그리고 부족해서다. 풍족하게 넘칠 정도로 음식이 자꾸만 나오는 화수분이 있다면 물리고 질리고 가리비처럼 그 이름만 들어도 기겁하게 될 것이다. 음식도 고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알맞게 먹어서 즐길 수도 있다.


음식의 맛있음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내가 도전하는 것들은

-음식을 쟁여놓지 않기

-할인한다고 여러 개 사지 않기

-배달음식 먹지 않기

-소식을 생각하며 오늘 먹을 만큼만 자주 장보기이다.

욕심 없이   먹기 적당한 재료만 손질하여 알맞게 양을 정하는 , 나의 절제가 음식을 더욱 맛있게 하고 내 기분을 좋게 만들 수 있다.


새벽에 눈을 뜨면 몸은 아주 가볍게 풀고 부엌에서 음식은 아주  무겁게 만드는 생각에 가끔 창피할 때가 있다. 나는 매슬로우의 저차 욕구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약한 인간인가. 누군 새벽에 일어나서 독서를 한다는 데 나는 도마에서 두부봉을 썰고 있구나. 생각하며 말이다.

곱씹어보면 먹기 위해 일어나는 게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반문하고 싶다.


깨끗한 도마에 물에 씻은 애호박을 썰고 기름을 묻히지 않은 코팅 프라이팬에 애호박과 두부봉 하나를 썰어 나란히 올려놓는 . 계란물을 풀어 애호박에 조금씩 묻혀주는 . 수많은 설거지거리가 나오지만 음식을 만드는  얻는 기쁨, 작은 성취 small success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제일 간단하게 작은 성공을 맛볼  있는 하루를 선택하고 바로  결과물을 마주하고 위장이 행복으로 풍만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먹기 위해 일어난다. 이는 성실하게 보낼 하루를 맞이하는 작은 성공으로 시작하는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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