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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자까 Oct 24. 2022

나의 첫 수술

엄밀히 말하자면  수술은 아니다. 비중격 만곡증 수술을 받은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대학병원에서 입원에 걸쳐 이루어지는 팔에 바늘 꽂고 다니는 그런 중한 수술은 처음이다.

교수님이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다. 맞다. 간단한 수술인데 나까지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발목 인대 파열까지는 아니지만 잦은 접질음으로 인대가 늘어나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교수 소견이 있었다. 수술을 권유하였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여서 무엇보다 진료예약을 1년이나 기다려서 받았기에 그 기다림의 비용이 커서 수술을 더 쉽게 생각한 경향도 있다. 그리고 교수님에 대한 무한한 신뢰로 나는 바로 수술 날짜를 잡았다.


내가 무직 상태여서 모든 절차가 쉬웠지만 직장을 다녔다면 6개월은 휴직은 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수술 전에 이루어지는 각종 검사가 있지만 시간 선택은 내 재량이 아니고 교수님과 빈 시간 재량이다. 수술 후에도 6주간 깁스는 필수이고 그 이후에 기간 연장이 필요한지는 아무도 모른다. 재활은 3년은 해야 하겠지.




"홍자까님 수술방으로 이동하겠습니다."

팔에 굵은 정맥 주삿바늘이 꽂힌 채 이동침대에 누워있다. 머리는 양갈래, 나를 덮은 것은 한낱 천떼기 일 뿐, 그 아래로는 난 자연인이다. 이동침대에 누우니 동태 눈깔로 변한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는데 나는 간단한 수술이 아니다. 나는 병원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면 간단하지 않다.


현실 부정을 시작할 때쯤 정시에 수술방으로 이동한다. 수술방 천장에는 토끼들이 뛰어다닌다. 아직도 뒤돌아있는 토끼의 토실한 엉덩이가 생각난다. 저 귀여운 토끼 엉덩이를 보면서 수술이 덜 무섭게 느껴지라고 한 모양인데 병원 당신들은 틀렸다. 여전히 무섭다. 척추마취를 해야 하니 등을 새우처럼 오므린다. 정맥주사 다음으로 척추마취 주사가 제일 무섭다. 피검사는 이제 귀여워 보일 정도다. 등에 바늘을 꽂는 일이 살면서 얼마나 있겠는가. 척수를 따라 흐르는 마취액이 골반, 허벅지, 종아리, 발 까지 흘러가는 게 느껴진다.

어라.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때 숨이 턱 막혀서 숨이 가빠져온다. 마취과 의사가 숨이 갑갑하면 말하라고 하는데 나는 소용없는 불쌍한 눈을 하고 애절하게 묻는다.

"이게 맞는 건가요?"

처음 척추마취를 해보니 뭐가 맞는지 틀린지도 모르겠고 이게 맞나 싶기도 한데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 게 마취 목적인데 이게 맞냐고 물었으니 그땐 많이 무서웠고 당황했고 긴장했음에 틀림없다. 마취과 의사는 내가 긴장을 풀 때까지 기다려준다. 오른손은 아빠 손을 잡고 왼손은 남편 손을 잡는다. 숨이 편안해지자 수면마취를 시작했다.




병상에 누워서 당신의 손이 닿는 곳곳마다 물건을 쌓아놓던 아빠의 모습이 생각난다. 거동이 힘드니 최대한 움직임을 줄이려고 자주 쓰는 물건들을 최대한 몸 가까이에 놓았다. 나는 그걸 싫어했다. 병상도 좁은데 주변 정리가 되어 보이지 않고 물건이 다 나와있어서 안 그래도 복잡한 마음 더 정신산만 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빠가 깨끗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우리 아빠 이런 사람 아닌데 더 멋있는 사람인데. 주변에 쌓여있는 물건들이 아빠를 더 초라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내가 주변 짐을 조금씩 정리하며 아빠는 신경질을 냈다. 짜증이 나서 나는 말없이 내 맘대로 한다. 나중에는 아빠한테 두 손 두 발 다 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아빠가 나에게 뭘 던지지 않은 게 참 다행이다 싶다.


수술 후 집에 돌아온 후에 하루 사이에 나의 생활 반경이 만들어졌다. 퇴원이 너무 빠른 게 아니야? 고작 3박 4일 입원이라니 더 입원해야 하는 거 아니야? 병원에서 내 발목을 째놨다가 붙여놓고 할 일 다 했으니 이제 집에 가 라고 하니 난 무서웠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내가 가진 일시적 장애에 적응하는 건 반나절이 걸리지 않았다. 사람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다. 나는 병상에 누워있던 아빠처럼 소파 옆에 내 물건들을 하나둘씩 쌓아놓는다. 목발로 서서 목에 가방을 걸고 가방에 이것저것 담아서 소파 옆에 내려놓는다. 다람쥐가 입을 도토리 저장창고로 이용하듯이 그리고 도토리를 귀중한 곳에 숨겨놓는 것처럼 난 소파 옆에 나만 보이는 규칙이 있게 물건들을 정리했다. 남편의 두 눈은 모른다. "이게 왜 여깄지?" 혼잣말하며 물건을 도로 정리하면 나는 소리를 지른다. 환자가 보호자를 가장 사랑하는 방법으로 화내는 건 소리지르기 밖에 없다. 목발로 내리치지 않은게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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