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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 늘보 Oct 08. 2020

알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친구의 아픔이 보였다

지난 1년간 거의 매일 아침을 똑같은 커피숍에서 보냈다. 제주 북쪽 용담 해안에 위치한  커피숍에는 한적한 2 창가에 우리 가족의 지정석이 있다. 항상 반겨주는 직원들의 따듯한 마음으로 만들어진 향긋한 커피를 마시며 창밖의 바다를 내다보면 마음이 바다만큼  넓어지는  좋아서 남편과 함께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어느 날 문득 커피숍 창 밖으로 내다본 바다의 왼쪽 끄트머리 저 멀리에 작은 섬이 희미하게 보였다. 워낙 희미해서 지금 내가 보는 것이 정말 섬인지 수평선 끝자락에 서 있는 배인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내 눈 안의 티끌인지 잘 모르겠어서 남편에게 물어서 확인했다. 남편은 섬이 맞단다. 게다가 그 섬이 항상 거기 있었다는 거다.


1년 내내 아침마다 내다본 바다인데 그동안 한 번도 그 섬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서 재차 확인했다. 남편은 진짜라고 하늘에 대고 맹세했다. 그런데도 안 믿겨서 혹시 움직이는 배가 아닐까 해서 몇 시간째 계속 흘끔흘끔 쳐다봤다. 정말이었다. 분명한 섬이었다. 움직이지 않고 늘 같은 자리에 있는 섬이었다. 아니, 아무리 창밖으로 내다보는 풍경의 왼쪽 구석 퉁이에 있다고는 하지만 어찌 그동안 단 한 번도 눈치채지 못했던 걸까. 정말 미스터리였다.


그런데 한번 눈에 들어온 섬은 그날 이후로는 안 보고 싶어도 안 볼 수가 없었다. 섬이 너무나도 분명히 거기 서 있어서 황당할 정도였다. 알기 전에는 보이지도 존재하지도 않던 섬이 알고 나니 너무나도 분명하게 늘 거기에 존재했다. 알고 나면 보이는구나. 보이고 나서야 비로소 존재하는 거구나.


우리네 삶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살면서 직접 경험한 것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갓 대학을 졸업했을 때 친한 친구의 아버지께서 지병으로 돌아가셨었다. 그때 나는 아버지를 잃은 그 친구가 정말 안됐다 생각됐다. 정말 슬프겠다고, 정말 유감이라고,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으면 알려 달라고 그렇게 위로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나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을 찾아온 그 친구를 보고 눈물이 터졌다. 나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도 슬펐지만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느꼈을 친구의 상실감과 슬픔이 이제야 비로소 이해가 됐다. 미안함에 눈물이 폭풍처럼 쏟아졌다. 친구에게 계속해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했다. 친구도 같이 부여잡고 울었다.


그 이후로 주변에 부모님이나 가까운 가족이 돌아가신 지인들을 만나면 마음 깊은 곳에서 진정한 위로가 나왔다. 그 마음이 헤아려져서 진심으로 같이 울어 줄 수 있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몸이 아파서 일 년을 엄청 고생하고 난 후에 아픈 사람의 심정이 진정으로 이해가 됐다. 아이를 낳고 나서야 비행기 안에서 우는 아이를 달래는 젊은 엄마의 고충이 헤아려졌다. 너그러워졌다.


사람은 자기가 겪어보지 않은 일은 진정으로 이해하기가 힘든가 보다. 세상에는 알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지 말아야겠다.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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