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주는 날씨가 너무 찬란해서 눈물이 난다. 바다 위에 반짝이는 햇살이 숨 멋도록 아름다워서 눈물이 난다. 머리카락을 찰랑찰랑 춤추게 하는 상쾌한 바람이 주는 생생한 감촉이 감동적이어서 촉촉해진 눈을 감게 된다. 이런 날씨에는 아침에 간 커피숍에 오래 앉아 있질 못하고 일찍 나오게 된다. 점심을 먹으러 일부러 먼 곳을 찾아가게 된다. 핑곗거리를 찾아 시장도 자주 간다.
오늘도 날씨가 너무 좋아서 커피숍에서 평소보다 조금 일찍 나왔다. 지름길 말고 길게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여 집을 향해 걷는데 해안가 홀로 서있는 나무에 때 지난 할로윈 파티가 열렸다. 커다란 나무를 빼곡하고 하얗게 덮은 것은 수십 마리의 거미가 쳐놓은 수많은 거미줄이었다. 아마도 한 어미에게서 난 거미 형제들이지 싶었다. 가까운 곳에 다른 나무가 없는 탓에 아마도 멀리 다른 곳으로 퍼지지 못하고 다들 한자리에 모여 살게 된 듯했다.
아파트처럼 빽빽하게 들어선 거미줄들을 보고 있자니 과연 여기서 이 모든 거미들이 충분히 먹을 만큼의 곤충이 잡힐까 하는 걱정이 슬며시 올라왔다. 거미는 최소 며칠에 한번씩 먹어야 생존할 수 있는 걸까? 이 한그루 나무에서 하루에 몇 마리의 곤충이 잡혀야 이 모든 거미 형제들이 다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어릴 때부터 내 어머니의 표현으로는 수순대짓이라 부르는 그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과 행동을 곧잘 하는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핸드폰을 꺼내 인터넷 검색을 했다. 찾는 정보는 나오지 않았지만 대신 전 세계에서 거미가 먹는 먹이의 총량이 연간 4억에서 8억 톤인데 이것은 전 세계에서 고래가 먹는 먹이의 양보다 많다는 신박한 정보만 알게 되었다. 그만큼 거미 개체수가 많다는 거다. 크기가 작다고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내 눈에 안 보인다고 없는 게 아니었다.
인터넷에서도 쉽게 못 찾는 정보를 뒤지다 보니 문득 내가 또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구나 생각됐다. 거미가 어련히 알아서 잘 살아갈까... 거미는 아마 나 같은 생각은 안 할 것이다. 자기가 쳐 놓은 거미줄에 일주일에 몇 마리가 잡혀야 살아갈 수 있을지 계산하며 살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거미줄에 뭔가 걸리면 잡아먹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기다릴 것이다. 먹이가 걸려야 하는 데... 그렇지 않으면 배가 고플 텐데... 내일까지는 한 마리라도 잡아야 하는데... 이런 걱정도 하지 않을 테다. 기다리다 먹이가 안 잡히면 새 거미줄을 칠 수도 있다. 집을 옮길 수도 있다. 몇몇 용감한 거미들은 어딘가에 있을 다른 나무를 찾아 강한 제주의 바닷 바람에 이미 몸을 내던졌을 수도 있다. 아주 배가 고프면 움직임을 줄일 수도 있을 테다. 최악의 경우에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내가 이렇게는 죽을 수는 없다고 신을 원망하지는 않을 듯싶다. 거미는 아마 그냥 살지 싶다. 그냥 살다 가지 싶다.
아마 법륜스님이었지 싶다. 지구 상의 모든 생명중에 오로지 인간만이 자기가 먹고사는 데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한다고 말한 분이. 동물은 그저 이 순간 배가 고프면 먹이를 잡아먹는다.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다른 동물의 식량을 그저 갖고 싶다는 이유 때문에 뺏아가지는 않는다. 까치는 둥지를 두 개 짓지 않는다. 소라게도 이고 다니는 껍데기가 하나밖에 없다. 뱀도 허물을 한 번에 두 개씩 벗는 법이 없다.
그뿐인가. 식물은심지어없는영양소를스스로창조해서먹는다. 딱주어진양만큼의햇볕과물과공기만으로그렇게만든영양소를자기만먹고사는게아니라다른동물한테스스럼없이내주기까지한다. 심지어나를먹어달라고신의선물이라불릴만큼맛과향이뛰어난과일이라는음식까지요리해 준다. 이것이야말로신박한정보다. 인터넷에서찾을필요도없다. 가만히생각해보면이것만큼경이로운일이없다. 지극히일상적이어보이는자연의이완벽한조화로움보다더기적적인일이없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데 도대체 누가 어떤 기준으로 그런 말을 했겠는가. 그건 그저 인간이 만들어낸 이야기일 뿐이다. 그리고 스스로 자기가 최고라고 하는 이 인간 때문에 세상이 온통 혼란스럽다. 북극곰이 배가 고파 죽고 새끼 펭귄이 얼어 죽는다. 불쌍한 사슴들이 구석구석 숲과 산을 가로질러 난 도로에서 치여 죽을 때 우리는 온통 운전자와 동승자의 안전만 걱정이다. 이미 사람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너무나도 익숙해서 다르게 생각할 여지조차 없는 일이 대부분이다.
거미줄에 가만히 매달려 있는 거미를 보면서 사람이 이 거미처럼만 살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거미처럼 자기 할 일을 다 하고 그냥 기다리며 살면 아마 좋을 것 같다 생각했다. 자기 먹을 만큼만 챙기고 걱정 없이, 계산 없이 살면 좋겠다 생각했다. 사람이 욕심 없이, 또 걱정 없이 살면 아마 북극곰이 행복할 것 같다. 분명 사람도 행복하지 싶다. 아니, 그것이야 말로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