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주변에서 나무늘보답지 않게 부지런해졌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러고 보니 거의 매일 글을 쓴다. 브런치에는 에세이를 쓰고 블로그에는 영어 공부에 대한 글을 쓴다. 나무늘보라는 이름이 더이상 안 어울린다는 말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많은 시간을 쉬면서 보내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하루에 18시간 이상 잠을 자고 움직임이 극단적으로 적은 탓에 하루에 나뭇잎 3개만 먹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나무늘보의 행보치고는 너무 부지런하지 않은가.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나무늘보에서 부지런한 나무늘보로 이름을 바꾸라는 말을 들었다.
부지런한 나무늘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표현이 주는 모순적인 어감이 아주 좋았다. 요즘 쓰는 나의 글을, 그리고 나의 생활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
예전엔 일관성이 있고 논리적인 논문을 썼다.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 논리적인 글을 쓰는 법을 훈련받았다. 주장을 분명하게 쓰고, 참고 문헌을 인용해 가면서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을 일관적으로 전개하는 글을 썼다. 사실 처음에는 영어식 논문 쓰기가 쉽지 않았다. 영어로 쓰는 논문에서는 서두부터 결론을 말하고 결론을 뒷받침하는 내용으로만 글을 단단하고 뾰족하게 써야 한다. 지금은 오랜 훈련을 거쳐서인지 영어로 논문을 쓸 때는 글이 당연히 뾰족하게 나온다. 논문에서는 내가 옳다는 말이 쉽게 나온다. 너는 틀렸다는 말도 서슴없이 한다.
논문에서는 너도 옳고 나도 옳은 일이 잘 없다. 내가 옳으면 네가 옳지 않은 게 당연하다. 서양의 형식 논리학적인 생각이다. A는 B이고 C는 B가 아니라면 A는 C일 수가 없다. B이면서 B아닌 일이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서양 사람들이 황희 정승을 본다면 어딘가 좀 모자란 사람이라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 노비가 둘 다 옳을 수는 없는 터다.
요즘 쓰는 삶에 대한 에세이는 그렇지 않다. 논문 속에선 모순이 허용 안 될지 몰라도 에세이에선 자연스럽게 모순을 이야기하게 된다. 사실 삶은 온통 모순 투성이다. 삶에서는 너도 옳고 나도 옳을 수 있다. 살다 보면 너도 옳고 나도 옳은 때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더 많지 않은가. 좋은 것도 나쁜 것이 되기도 하고 나쁜 것도 좋은 것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삶에는 논문보다는 에세이가 더 어울린다. 삶에서는 일관성을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적어도 내 삶은 온통 모순 투성이다.
집도 없고 차도 없는 편이 좋지만 빨래 건조기는 있는 게 좋다. 가방이 하나뿐인 간소하고 단순한 삶을 즐기지만 테 색깔이 다른 안경이 다섯 개나 있는 게 좋다. 벌레가 불쌍해서 죽이지 못하지만 모기는 쉽게 죽인다. 시장에선 생선 잡는 것을 보기 힘들어 하지만 좋아하는 회는 잘도 사 먹는다. 소박한 생활을 하며 적은 돈으로도 행복하지만 돈은 많은 편이 좋다. 가만히 여유 있게 쉬는 것을 좋아하지만부지런히 글을 쓰면서 행복하다. 힘을 빼고 순응하며 살지만 추구하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편안하고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은 없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조용한 열정이 가만히 느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부지런한 나무늘보라는 말이 주는 모순적인 느낌이 좋다. 느리고 여유 있지만 부지런하게 글을 쓰는 지금이 좋다. 일관성 있는 논문도 쓰지만 모순 투성이 삶에 대한 에세이도 쓰는 지금이 아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