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차원의 나를 만나기
나를 사랑하는 법을 이야기하기 전에 "나"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사랑을 받고 싶은 나는 누구일까요? 나를 사랑하려는 나는 누구일까요? "나"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두 가지 차원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첫 번째는 보통의 자기소개서에서 나오는 내용들로 이루어진 답변입니다. 나의 이름, 성별, 나이, 직업, 가족관계, 사는 곳... 등등 생물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정의된 정체성을 가리킵니다. 그동안 살아온 나의 삶의 궤적에서 생겨난 정체성입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겪은 경험과 사회적으로 맺은 관계와 해온 일들을 요약한 내 삶의 내용입니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설명할 때 드러나는 내 삶의 이야기들입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나의 모습입니다.
언뜻 보기에 단단해 보이는 이 정체성은 사실 언제든 변할 수 있습니다. 삶이 늘 변하고 변하기를 멈추는 일이 없는 탓입니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정체성마저도 언젠가는 변하게 마련입니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차원의 나는 그보다 조금 더 궁극적이고 변하지 않는, 깊은 차원의 나입니다. 늘 지금 이 순간을 경험하고 있는 나입니다. 나이와 직업과 가족 관계와 생각과 감정과 이 모든 것들이 변하는 중에도 늘 변함없이 이 자리에 있으며 단 한 번도 현재의 나를 떠난 적이 없는 "나"라는 존재감입니다.
실제 지금 이 순간을 경험하고 있는 “내”가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다음의 질문에 머리로 생각하여 대답하지 말고 느낌으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나를 느껴봅니다. 지금 이 순간 글을 읽고 있는 “나”는 어디에 있나요? "나"는 무엇인가요?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내쉬며 느껴봅니다. 숨을 쉬고 있는 "나"는 어디에 있나요?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는 "나"는 무엇인가요? 잠시 멈추어 느껴보세요.
지금 이 순간을 경험하고 있는 나,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나. 이것이 바로 변하지 않는 차원의 나입니다. 늘 현재 이 순간에 존재하며 늘 알아차리고 있는 나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내”가 무엇을 봤다, “내”가 무엇을 느꼈다 할 때 이 “나”는 바로 늘 지금 이 순간을 알아차리고 있는 의식입니다. 뭐라고 콕 집어 말하기도 어렵고 분명히 드러나지도 않지만 늘 존재하는 그 무엇인가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의 경험을 떠난 적이 없는 존재감. 모든 순간 늘 존재하고 있고 나타난 경험을 알아차리고 있는 나입니다.
잠시 고요히 앉아 주변의 것들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는 나의 존재를 느껴보세요. 내가 지금 여기 있음을 느껴보세요. 알아차리고 있는 나를 느껴보세요.
내 눈앞에 보이는 이 장면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다른 장면으로 바뀔 것입니다. 지금 내 눈앞의 그 어떤 것도 영원히 지속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장면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는 이 존재는 변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존재감을 느껴보세요.
잠시 멈추어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를 느껴보세요. 그리고 소리가 드러나고 사라지는 공간으로 존재해 보세요. 지금 여기의 존재감을 느껴보세요.
소리는 나타나고 사라져도 그 소리가 드러나는 배경인 나는 변함없이 늘 지금 여기에 존재합니다. 마치 하늘에 구름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져도 하늘은 항상 그대로 이듯이 나 역시 늘 지금 여기 존재합니다.
삶의 모든 경험이 나타나고 사라지며 변하는 가운데에서도 그것을 알아차리는 “나”는 늘 그 자리에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나타나도록 허용하며 지금 이 순간 항상 존재하고 있습니다. 단 한순간도 나를 떠난 적이 없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늘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언제나 항상 나와 함께 있습니다.
나의 본질은 내 앞에 펼쳐진 이 온 우주가 나타나고 사라지는 바탕입니다. 그저 존재함으로써 모든 것이 창조되고 경험되고 알아차려지는 근본 바탕입니다.
알아차리는 내가 없으면 내가 경험하는 이 세상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지금 경험하는 이 세상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살아가는 이 소우주, 이 삶의 중심이자 세상의 중심입니다.
이 세상 유일무이한 존재가 바로 나입니다.
단지 존재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헤아릴 수 없이 소중한 존재가 바로 나입니다.
나의 가치에는 다른 이유가 필요 없습니다. 내가 소중한 것은 내가 무엇을 이루어서도 아니고 내가 무엇을 가져서도 아니며 내가 무엇을 하거나 또는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지금 여기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소중한 것이 나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유일무이하고 소중한 나를 왜 우리는 사랑하지 못하는 걸까요? 나는 왜 자꾸 내가 부족하고 작게 느껴지는 걸까요? 우리는 왜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허용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걸까요?
깊은 차원의 나의 존재감은 잊고 표면적인 삶의 경험에만 매몰되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마치 거대한 바다가 잠시 잠깐 표면에 일렁이는 파도가 나의 전부라고 믿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본질은 깊고 넓게 존재하는 바다임을 잊고 순간순간 변화하는 파도의 일렁임에만 매몰되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바다의 존재를 잊고 파도로서만 살아갈 때 우리는 세상으로부터의 분리감을 느낍니다. 나와 내가 아닌 것들로 분리하고, 세상과 나를 비교하고, 비교 속에서 가치를 매기는 데 익숙해집니다. 잠깐 올라온 내 파도가 네 파도보다 높은 지 아닌 지가 중요해집니다. 우리는 거대한 바다이며 모든 파도는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고 말입니다.
그러나 두 가지 차원의 나는 모두 나의 모습입니다. 전체적인 하나로서의 내가 바다라면 잠시 경험을 하고 있는 나는 파도입니다. 파도는 바다의 일부이고 바다는 파도의 본래 모습인 것입니다.
지금 이루려 하고 하는 목표나 과거의 영광이나 후회에 빠져 지금 현재의 삶이 뭔가 부족하거나 옳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면 표면적인 삶에 매몰되어 전체적인 나를 잊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럴 때는 잠시 과거나 미래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 그저 존재하는 나를 느껴봅니다. 나타나는 모든 생각과 감정과 느낌 너머의 배경으로 늘 고요하게 존재하며 알아차리는 나를 느껴봅니다.
진정한 자기 사랑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이자 첫걸음은 깊은 차원의 존재감, 현존하는 나를 느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나의 존재감을 느낍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살아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경이롭고 생생한 이 순간의 살아있음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잠시 멈추어 호흡을 한번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내가 지금 여기 살아 있음을 느껴봅니다. 나의 존재감을 느낍니다.
일상에서 이 순간의 존재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은 표면적인 삶에서 이루려고 하는 목표에 매몰되어 지금 현재의 삶이 뭔가 부족하거나 옳지 않다는 느낌 빠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줍니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의 몰아침에서 한 발짝 떨어져 그것들을 밀어내지도 붙잡지도 않는 고요한 힘을 삶에 불어넣어 줍니다.
일상에서 두 차원의 나를 균형 있게 느끼며 살아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표면적인 나에만 너무 몰입이 되면 중심을 잃기 쉽습니다.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으로써의 나에게만 초점을 두고 살아간다면 삶이 어렵고 무겁고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마음이 현재에 머무를 때 고요한 가운데 평화로운 만족감과 은은한 즐거움이 드러납니다. 이미 충만한 나의 본래 느낌이 드러납니다. 그러니 기회가 생길 때마다 고요함을 즐기며 그저 존재하는 지금 이 순간을 느낍니다.
일상의 분주함 속에서도 잠시 틈을 내어 분주한 마음을 지금 이 순간에 둡니다. 아주 잠시라도 멈추어 고요하게 내면의 깊은 자리에 머무는 시간을 매일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것으로 자기 사랑의 실천을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