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사랑의 이해
자기 사랑의 방법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 연재글에서 말하는 “사랑"의 뜻을 헤아려 보겠습니다. 보통 이야기하는 사랑과 이 글에서 가리키는 사랑의 의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사랑을 "원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페인어 표현으로 사랑해는 "te quiero" 입니다. 직역하자면 "나는 당신을 원해"라는 뜻입니다. 그만큼 흔히들 사랑을 떠올리면 상대를 원하는 마음을 연상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원하는 마음보다 훨씬 깊고 넓고 열린 느낌입니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치 심오하고 끝없이 열려 있습니다. 다른 말로는 "있는 그대로의 따스한 허용"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사랑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마음이고, 그 어떤 모습이어도 이해하고 포용하는 마음이고, 조건 없이 허용하고 지지하는 마음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무조건적입니다. 이 말은 조건적인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내가 너에게 어떻게 해줬는데… 네가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난 널 사랑해. 그러니까 너도 날 사랑해야해.” 또는 "난 널 사랑해. 그러니 네가 이렇게 했으면 좋겠어. 그렇지 않는다면 실망할 거야." 하는 마음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무조건적인 자기 사랑은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허용하고 포용하고 이해하는 마음입니다. 지금 이 모습에서 단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와 평화롭게 지내는 마음입니다.
잠시 멈추어 느껴봅시다.
지금 이 순간 숨을 쉬고 있는 나를 느껴봅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온전히 허용하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온 몸으로 느껴봅니다.
이루어야 할 것도 없고 해야 할 것도 없이 잠시 지금 이대로 그저 존재합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려 다시 살 수 없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미래도 없고 과거도 없이 오로지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합니다.
지금 이 자리, 이 느낌에서 한치의 벗어남도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가만히 존재해 봅니다. 마음의 닻을 바로 여기에 내리고 이 순간의 느낌 있는 그대로 존재해 봅니다.
나의 모든 것을 허용한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 나의 안과 밖에 드러난 모든 것을 그대로 둔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드러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둔다는 뜻입니다. 내 안에 떠오르는 생각을 있는 그대로 둔다는 것입니다. 나의 드러난 겉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편안합니다. 눈 앞에 펼쳐진 나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감사합니다.
나에게 나타나는 모든 것을 열린 마음으로, 친절하고 온화한 연민의 태도로 받아들이고 수용합니다. 그 어떤 생각이 일어나든 어떤 감정이 일어나든 아무것도 비판하지도 바꾸려 하지도 않고 그저 온화하고 넓은 마음으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허용하여 안아 줍니다. 조금 더 따듯하고 조금 더 부드럽고 조금 더 넓게 포용하는 느낌으로 알아차리며 함께합니다.
지금 이 순간을 허용한다고 해서 변화하기를 포기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을 온전히 허용하고 포용할 때 사랑이 눈 앞의 베일을 벗깁니다. 저항에 소모되는 에너지가 해방되고 현재에 느껴지는 감각에 마음을 열고 찰나 찰나 포용할 때 이미 조화로운 삶이 나를 통해 자연스럽게 흐르기 시작합니다.
나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내 생각과 행동과 감정을 일거수일투족 살피며 딴지를 거는 사람과 평생을 산다고 상상해 봅시다. 지금보다 더 나은 버젼의 내가 되어야 한다고, 또는 지금과는 다르게 느껴야한다고 나를 옆에서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사람과 매 순간 함께 한다면 어떨까요?
누구나 그런 상황을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비판자의 목소리를 24시간 쉬지 않고 들어야 한다면 그 어떤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도 삶이 피폐해 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바로 내가 나 자신에게 그런 비판자인 것은 아닐까요? 가장 가까운 나 자신에게 가장 가혹한 말을 서슴없이 내뱉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반대로 내가 늘 원해 왔고 꿈꿔 왔던 절대적인 지지와 사랑을 느끼며 24시간을 살아간다고 상상하면 어떤 느낌일까요. 24시간 언제든 원할 때 늘 함께 하며 내가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더라도 그럴 수 있다고 나를 늘 이해해 주고 지지해주고 격려해 주는 존재와 함께한다면 어떤 마음일지 상상해 봅니다. 절망의 끝자락에서조차도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지와 공감을 받을 수 있다면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온 마음으로 느껴봅시다.
바로 내가 나에게 그런 절대적인 지지자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린 대부분 자기 사랑에 매우 서툽니다.
낮에 저지른 실수를 생각하며 밤새도록 이불 킥을 하며 잠을 설쳐본 적 있지 않으신가요? 스스로를 탓하며 난 왜 이 모양이지 하며 자책해 본 적이 있지 않을까요?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에 대한 걱정과 무능한 스스로에 대한 불신 사이에서 끊임없는 생각의 챗바퀴를 돌려본 적이 있지 않으신가요? 저는 그랬습니다. 괴로운 감정에 끄달리며 더 이상 괴롭고 싶지 않다 생각하며 지샌 밤이 아마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을 겁니다.
자기 사랑은 남들이 보기에 성공을 이루었는지 아닌지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사회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들도 자기 사랑의 부족에 시달리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닦달하고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방식으로 자기 사랑의 부족에서 오는 결핍감을 관리하려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때 인생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의 형벌 같단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시시포스는 신의 왕 제우스에게 형벌을 받아서 가파른 언덕 위로 큰 돌을 밀어 올려야 했던 인물입니다. 언덕의 정상으로 돌을 올려놓으면 굴러 떨어지고 다시 올려놓으면 굴러 떨어지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형벌에 처했던 인물입니다.
어렴풋이 제가 시시포스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추구하고 성취하고 성취 후에는 다른 목표를 세웠습니다. 원하는 것을 이루는 순간 잠시나마 더 이상 다른 것을 원하지 않는 상태를 경험하니까 말입니다. 짧은 순간이나마 스스로를 닦달하는 것을 멈추며 안심하고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이런 행복은 지속 가능한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우린 사실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원하는 물건을 사서 행복하다면 물건의 존재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원하는 것을 가졌을 때 잠시나마 원하는 마음이 내려 놓아진 마음의 상태가 행복한 것입니다. 물건 자체에 행복이 있는 거라면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그 물건이 주는 행복의 크기가 줄어들 리가 없지 않습니까.
많은 분들이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그토록 기뻤던 대학 입학도, 첫 직장도, 첫 차도, 새 아파트도, 꿈꿔왔던 승진도 결혼도, 출산도, 그 어떤 것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무덤덤해지는 우리의 마음을. 행복이 내가 원하는 대상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나를 바꾸고 상황을 바꾸고 외부 조건을 바꾸고 원하는 것을 성취해야 행복해 질 수 있다는 믿음은 출발점부터가 거짓된 약속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미 시작부터 가짜 자기 사랑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진짜 자기 사랑과 가짜 자기 사랑을 구분하는 손쉬운 방법은 사랑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고 싶고 자신을 성장시키고 싶어합니다. 다만 그 욕구가 나의 내면의 진실에서 드러나는 것인지, 아니면 남과의 비교에서 만들어진 것인지를 잘 살펴보면 가짜와 진짜 자기 사랑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폄하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할 때 우리는 종종 외부의 것들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남과의 비교를 통해서 나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 합니다. 남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서 나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합니다. 남보다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고 더 멋진 외모를 갖추는 데 몰두합니다.
만일 지금 무언가를 이루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면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지금 내가 목표하고 있는 그것이 이루어지면 나의 가치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나요?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내 가치가 낮아지거나 내 인생이 낭비된 것 같으실까요? 만약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목표하는 것을 이루고 난 후에도 행복하지 않을 겁니다. 잠깐의 행복이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나의 가치는 지금 내게 없는 것들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 스스로가 이미 있는 그대로 가치있는 존재임을 알고 지금 이대로 나의 가치를 충분히 느끼는 것이 진짜 나의 가치를 찾는 길입니다. 허상의 가치를 쫓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이미 존재하는 가치를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진짜 자기 사랑입니다.
자기 사랑이 어려운 이유는 바로 “나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존재이자 신성의 표현인 당신의 진정한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나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존재를 진정 이해할 때 저절로 스스로를 가치를 알아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 글에서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