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01.
웃자란 아이를 보면 왜 슬퍼질까? 그 조숙함 뒤에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만들어서일 테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스즈도 그렇다. 일찍 여물어야만 했던 아이, 아버지의 장례식에서조차 마음껏 울지 못하고 엄마와 동생들을 챙겨야만 했던 아이. 태어나 처음 만난 언니들 앞에서, 내내 어른 노릇을 해왔던 자신을 그저 어린 동생으로 바라봐준 그들 앞에서 겨우겨우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릴 수 있었던 아이.
스즈를 보며 은율이를 떠올렸다. 치명적인 눈웃음을 갖고 있는 아이, 누굴 닮았는지 애교가 넘치는 아이, 아직 천일도 살지 않았으면서 매일 천년 만에 만난 것처럼 “아빠!” 외치며 나를 향해 달려오는 아이. 하루하루 귀여움을 경신하고 있는 우리 아이.
왜 전혀 다른 두 사람이 겹쳐 보였을까. 미안해서. 은호의 탄생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로마 시내를 방방곡곡 훑으며 꽃을 샀다. 소위 말하는 ‘임밍아웃’ 때 부모님들은 나이도 잊고 말 그대로 방방 뛰었다. 집은 박수와 밝은 눈물로 가득했다.
은율이는 침묵으로 존재를 알렸다. 수민이 테스트를 해보겠다며 들어간 안방의 고요함, 화장실 문 앞에 주저앉은 수민의 뒷모습, 긴 정적을 깨는 가냘픈 흐느낌. 그리고 가슴속에 뭔가 덜컹 내려앉던 이물감.
어디선가 듣기로 태아도 자신을 둘러싼 이들이 자신을 어떻게 여기는지 다 느낀다고 하던데. 어쩌면 은율이는 본능적으로 애교와 눈웃음을 익힌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갓난쟁이가 살 길은 예쁨 받는 것 말고는 없으니 말이다.
상념에 젖어 드는 찰나, 두두두두 소리가 들린다. 두 번의 시도 만에 방문을 활짝 열고 은율이가 들어온다. 눈으로 그린 반달이 반짝반짝. 그걸 보는 내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은율이의 그것과 대칭의 모양으로. 덕분에 우리는 이렇게 보름달을 또 하나 같이 만든다.
은율이의 사랑스러움이 투쟁의 결과물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이 해사함이 바라지 않도록 지켜주는 게 내 몫이라는 것. 이 해맑음을 누리고 있는 나는 대단한 행운아라는 것. 나는 다시 그의 손에 이끌려 냉장고로 향하고 있다는 것.
은율이를 재우고 다시 펼쳐 든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유독 눈길이 가는 대목이 있었다. 축구 시합 중 패스 미스를 한 뒤 사과하는 스즈에게 후타가 “Don’t mind!” 외치는 장면.
곰곰 생각해보니, 은율이의 “아빠, 아빠”가 마치 내게 전하는 “Don’t mind”로 들려서 저 페이지에 오래 머물렀던 것 같다. “아빠도 사람이니 그럴 수 있어. 괜히 지난 일 신경 쓰지 말고 까까나 하나 더 주세요”의 의미를 담은, “Don’t mind, 아빠”
오늘 꿈에서 멋진 패스를 주고받자, 즐거운 상상으로 잠드는 밤.
언젠가 만화방에서 함께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책장을 넘길 날을 기다리며, 아빠가.
*추신: 만화책에 까까를 묻히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