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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Sep 08. 2019

#8. 내게 호흥하는 너만 있다면

2019.09.08.

언젠가부터 내가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이 생기면 이런 말을 하고는 한다. “너의 결혼식 사회는 내가 볼게!” 혹시라도 내게 사회를 요청할 마음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아달라는 의미도 있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만큼 너의 특별한 날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싶다, 너도 나를 이처럼 소중하게 여겨주었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담겨 있는 말이다.


그 기원을 거슬러보면, 실제로 처음 친구의 결혼식 사회를 보고 난 뒤부터였던 것 같다. 작년 여름, 알리스와 헌재가 부부가 되는 순간에 단상에 선 이후로 그것이 얼마나 귀한 경험인지를 실감하게 되었다. 마침 바로 오늘이 내 생에 두 번째로 결혼식 사회를 본 커플이자 나의 또 다른 형제 관석 형과 누님 a.k.a 바깥양반의 결혼 1주년이다. 그날엔 영광스럽게도 성혼선언문까지 낭독했었는데, 알콩달콩 잘 살아주셔서 제가 감히 감사합니다. 축하해요.


비단 알리스 부부, 관석 부부 뿐만이 아니라 어쩐지 내 주변의 부부들은 다들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같다. 그들을 지켜보노라면 가슴속 저 깊은 곳에서 시샘이 치솟아 오른다. ‘내가 니들을 좋아하긴 하는데 말이야…, 근데 니들은 니들끼리 정말 그리 좋냐?’ 뭐 이런 식으로 입술을 삐쭉거리게 된다. 부들부들.


그중에서도 굳이 내 질투 세포를 자극하는 짝이 있다면 단연 풍문과 능청이다. 둘은 내게 그저 친구라고 칭하기엔 어딘지 껄쩍지근한 존재들이다. 아무래도 거의 매주 만나서 팟캐스트 <시시콜콜 시시알콜> 방송을 만들고 또 그와 연관되는 다양한 일들을 함께 해나가는, 막역한 친구이자 동료이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의 친구 사이라면 쉬이 나누기 힘든 깊이의 이야기를 매우 빈번하게 나눈다는 점에서 정서적인 유대의 농도가 높고, 동시에 그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수많은 일과 회의를 분담해야 하기에 보통의 친구 사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일에도 큰 서운함을 느끼는, 유사 가족 같은 사이가 되었다고나 할까. 그들에 대해서는 더 자세히 쓰게 될 날이, 반드시, 온다.


아무튼 이렇게 부러운 커플들을 무어라 설명하면 좋을지 종종 고심했었는데, 우연찮게도 최근에 그 답을 찾게 되었다. 영화 <라라랜드>를 다시 볼 날이 있었는데 이런 대사가 나왔다. “내 노래에 호흥하는 작은 어린아이 하나만 있으면 그걸로 나는 해낼 수 있어.” 저기서 ‘호흥’은 필시 ‘호응’의 오타일 것이다. 그런데 자꾸만 ‘호흥’이라는 단어를 곱씹게 되면서, 왠지 해답을 찾은 것만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들은 호응이 아니라 서로 호흥을 하는 사이 아닐까? 그러니까 단순히 상대에게 반응하는 수준을 넘어, 최선을 다해 서로의 흥을 돋우는 사이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 흥이 어깨춤을 추게 하는 흥일 수도 있고 웃음기 쫙 뺀 콧바람의 흥인 경우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그런 다이나믹한 관계야말로 망성쇠가 찾아와도 다시 흥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오늘도 ‘호흥’이라는 표현이 참으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을 만났다. <시시콜콜 시시알콜>에 청취자 게스트로 참여한 두 사람 중 한 명인 하이디님 커플이 그 주인공이다. 한 사람은 녹음을 하고 한 사람은 그것을 지켜보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서로를 살피는 모습, 이어진 뒤풀이에서 다 함께 대화를 나눌 때의 다정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어쩌다 보니 절정의 호흥 호흡을 자랑하는 두 콤비 사이에 혼자 덩그러니였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좋은 사람들 틈에서 였으니까, 너무너무 즐거운 시간이었으니까. 그리고 나도 제법 흥겨운 삶을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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