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형 여행자가 만난 다정한 히로시마

여자 혼자 히로시마 여행 Day 2

by 레이다


2일 차 아침이 밝았다.
모닝콜도 없이 기상했다. 내가 늦잠이라도 잘 까봐 옆 방 스페인 친구가 쿠당탕타당 고막을 노크해 줬다.





1.

숙소는 트램 정거장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었다. 1층에는 패밀리마트도 있어서 간식이나 야식 먹기 좋아 보였다.

내가 묵은 곳은 깔끔한 캡슐호텔이었다. 천장이 높은 편이라 캡슐호텔 특유의 답답한 느낌이 덜했다. 침대 밑은 짐을 보관할 수 있는 락커가 있었다. 내 26인치 캐리어 살구(살구색이라 살구다. 정겹고 입에 착 붙는다.)는 눕혀서 보관할 수 있었다. 신발장은 따로 없었다. 신발 바구니에 담아 락커에 보관하면 됐다.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구나 싶어 만족스러웠다.

​​

소개한 캡슐호텔은 가나야마초 역에 위치한 Cube Hiroshima.



그리고 그날 밤...

히로시마는 내내 비가 왔다. 여행자들은 젖은 운동화를 락커에 보관하지 않았다. 그럼 어디에 보관했을까? 따뜻한 히터 바람이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복도 한복판에 가지런히 벗어 두었다. 가지런히 벗어 둔다고 냄새 또한 정갈한 건 아니지요.

복도의 공기청정기는 밤새도록 악취와 전쟁 중이었다.



공익을 위해 황금레시피 공개



2.

숙소 앞 트램을 타고 이동했다. 도착지는 혼도리에 위치한 이치란 라멘. 어제 아부라소바를 실패해서, 비교적 성공 확률 높은 이치란에 도전하기로 했다.

블로그에서 한국인 입맛에 맞춘 주문법도 찾아뒀다. 마늘 한쪽을 다 넣으니 국물 맛이 시원해서 좋았다. 해장용으로 딱이었다.

하지만 반이나 남겼다. 면 익힌 정도를 체크하지 못한 탓이다. ‘기본’ 면 익힘은 심지가 살아 있어서 식도에 꽂힐 것 같았다. 다음엔 꼭 ‘부드럽게’로 선택해야지.

히로시마에서 도전하는 면요리마다 전패 중이다. 큰일이다. 오늘 저녁 메뉴도 면 요리인데...?



일본 성들은 대체로 비슷하게 생겼다.



3.

히로시마 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성 건너편으로 이동했다. 최적의 장소를 찾았는데 오가는 사람이 전혀 없다. 있어도 자전거 타고 쌩- 스쳐 간다.

가볍게 산책하듯 히로시마 시내를 둘러볼 계획이라 삼각대도 챙기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나뭇가지 사이에 대충 끼워 넣어 찍었다.

촬영 중, 팔이 간지러웠다. 팔에 새까맣고 통통한 모기 한 마리가 붙어서 까꿍 한다. 팔이며 다리며 네 방을 물렸다. 이후 잔디나 나무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4.

새로운 도시에 가면 꼭 미술관에 들린다. 이 작은 소도시 히로시마에 미술관이 있을까 했는데, 있다. 게다가 유명 화가들의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피카소, 고흐, 모네, 마티스, 샤갈, 르누아르 등등.

히로시마 미술관은 히로시마 성 건너편에 위치해 있다. 동선이 기가 막혀서 모른 척 슬쩍 들려볼 만하다.




우리나라 빵집에 비해 정말 저렴했던 일본 빵들



5.

근이완제 약발이 떨어졌는지 허리가 슬슬 아파왔다. 지하상가에 위치한 스타벅스에 갔다.

“One iced... Americano please.”

“한국인이세요?”

일본어로 주문받던 스타벅스 직원이 대뜸 국적 확인을 한다. 커피 주문할 땐 미리 여권을 꺼내놓자.

“핫 어떻게 아셨어요?”

“한국 사람들 말투가 있어요.”

직원은 눈을 접으며 웃었다. 일본인의 “마그도 나르도”처럼 한국인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국가색이 강한가 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민족이기도 하고.

“한국어 되게 잘하시네요.”

“하하 별로 못해요. 여행 오셨어요?”

나보다 더 잘하는 것 같았지만, 평소보다 말은 더 느리고 쉬운 단어만 뱉었다. 타지에서 한국말로 다가와 준 친절한 직원이 한국어에 흥미를 잃지 않았으면 했다.





6.

음료를 받아 8명은 거뜬히 이용할 수 있는 큰 테이블에 한 자리 차지했다. 이 자리는 주로 혼자 온 손님들이 이용했다.

유튜브 보던 중 앞에 누군가 앉았다. 강렬한 검은 입술의 사내였다. 검은 립스틱에 두꺼운 아이라인... 마릴린 맨슨? 칼 단발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올블랙 착장. 눈 마주치면 곤란한 일이 생길 것 같은 엄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손에 든 말차 프라푸치노를 빨대로 홀짝이는 일. 음료 위에 휘핑이 가득한 걸 보니 단음료가 취향인가 보다. 곤란한 일 까지는 안 생길지도...?




오꼬노미야끼 위에 올라간 초생강이 킥이었다.



7.

신림동의 백순대촌을 아는가? 느린레이다는 백순대를 무척 좋아한다. 10년 넘게 방문하는 단골집도 있다. 히로시마에는 ‘오코노미무라’라는 오코노미야끼촌이 존재한다. 이런 특별한 장소를 놓칠 수 없지.

유명한 오코노미야끼 집들은 웨이팅이 필수라고 해서 오픈런했다. 내가 찾은 곳은 ’론‘. 손님은 나뿐인데 앉지도 못하게 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혐한...?’

쎄물리에 자아가 위험을 감지하려는 찰나, 그녀가 친절한 자영업자 모드로 자아를 갈아 끼웠다.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자리를 내어주었다. 다행이다. 저녁 메뉴 차선책은 필요 없겠다.

오픈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ㄱ자로 둘러앉는 좌석이 가득 찼다. 나는 해산물 오코노미야끼로 주문했다. 가득 찬 좌석만큼 주문도 몰려들었다. 사장님은 철판에 오꼬노미야끼를 묘기 부리듯 만들었다.

맛도 훌륭했다. 초 생강이 들어가니 느끼함도 잡히고 짭조름하면서 맛있었다. 생맥주와 찰떡궁합이었다. 론의 해산물 오꼬노미야끼는 이번 여행 음식 순위 1위로 급부상했고, 이후로도 순위 변동은 없었다.

주문받은 음식이 모두 나가자 여유가 생긴 사장님이 말을 걸어왔다. 한국어 조금, 영어도 조금. 여행 왔냐, 사진 찍을래? 왜 더 안 먹냐. 혼자 먹기엔 양이 너무 많았다. 배 터진다고 몸짓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인사하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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