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아들과 호주 한 달 여행 이야기 중 골드코스트 편
윗도리를 훌렁 벗은 채 걷던 아들은 공원 한가운데 놓인 무지개색 탁자옆 파란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른다. 내일이면 사우스포트를 떠난다. 골드코스트 다른 지역에 사는 지인 집에서 하룻밤을 묵을 예정이라, 오늘이 메리톤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다.
"아들, 이제 호텔 수영장 가자, 그리고 저녁엔 엄마가 진짜 맛있는 스테이크 해줄게!"
그 한마디에 아들은 벌떡 일어난다.
사우스포트 메리톤을 예약한 이유는 단순했다. 청춘 시절 한 때 머물렀던 동네였고, 간단한 요리를 할 수 있는 작은 키친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두 발로 여행하기에 충분히 편리했기 때문이다. 그중 '작은 키친'은 오늘을 위한 선택이었다. 호텔 마지막 저녁식사는 아들에게 직접 구운 호주 스테이크를 선물하고 싶었다.
숙소옆 마켓 울월스에서 립아이 스테이크, 아스파라거스, 냉동 야채 한 팩을 사고 돌아오는 길, 저녁 햇살이 길게 드리운 거리에서 아들은 "엄마, 오늘 진짜 신나!"라며 흥분된 목소리로 말해준다.
그렇게 신나게 놀고 들어왔는데,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5층 수영장으로 달려간다. 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오션뷰와 건너편 마리나 미라지에 정박한 요트들을 배경 삼아, 꿀호는 구명조끼를 입고 물 위에 둥실 떠다니며 웃음을 터뜨린다.
그렇게 한참을 놀다 수영장에서 나와 스파에서 몸을 데우고, 실내풀로 자리를 옮기니 아빠와 어린 아들이 물속에서 장난을 치고 있다. 그동안 여러 번 새로운 친구를 사귄 경험으로 꿀호도 금세 같이 어울린다.
아이와 여행하며 느낀 점은 공원이든 놀이터든, 이곳 부모들은 '시간'을 들여 아이와 논다는 것이다. 주머니가 가벼워도 마음만 있으면 아이와 하루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그렇게 함께하는 시간이 자연스레 그들의 삶 한가운데 스며 있다.
오늘 하루 아들과 실컷 놀았지만, 내 지갑에서 나간 돈은 점심값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도시락을 준비했다면 한 푼도 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환경이, 그리고 이런 여유가 참 부러웠다.
숙소로 돌아오자 허기가 밀려왔다. 인덕션을 켜고 소금과 후추를 뿌린 립아이를 팬에 올린다. 치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방 안을 가득 채운다. 익어가는 고기 옆에 아스파라거스를 굽고, 냉동야채를 전자레인지에 데운다. 미디엄 웰던의 스테이크가 완성되고, 하얀 접시에 담긴 스테이크와 와인 한 잔, 오렌지 주스 한 잔이 테이블 위에 올랐다.
그때였다.
"펑- 펑-!"
어떤 사유인지 모르겠지만, 창 밖에서 불꽃이 터진다. 마리나 미라지 쪽 하늘에 금빛, 붉은빛 불꽃이 피어나며 밤하늘을 수놓는다.
누구의 축복인가
불꽃으로 하루의 피날레가 더 아름답게 완성되었다.
그리고, 내일은 또 다른 풍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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