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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스완 가족을 만나다, 브로드워터 파크랜드-3

8살 아들과 호주 한 달 여행 이야기 중 골드코스트 편

by 슬로우모닝

블랙스완이었다. 잔잔한 해변 물결 위로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검은 새들, 그 우아함에 나도 아들도 숨을 죽였다. 엄마와 아빠로 보이는 두 마리의 블랙스완과 다섯 마리의 새끼들이 바다 위로 유유히 흘러가고, 뒤편으로 파란 해변과 푸른 잔디가 펼쳐져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나올법한 사진이다. 그날 브로드워터 파크랜드에서 만난 이 장면은 호주 한 달 여행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 선물이 되었다.


브로드워터 파크랜드의 얕은 물과 풀밭은 블랙스완이 먹이를 찾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뛰어가던 아들은 새들이 혹여라도 놀라서 도망가지 않게 멀리서 멈춰 선다. 처음 보는 새의 크기와 검은 깃털, 길게 뻗은 목, 붉은 부리를 신기한 듯 바라본다. 지금껏 봐온 그 어떤 새보다도 압도적인 존재감이다.


아빠일 듯한 가장 큰 새가 뭍으로 나와 위풍당당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주변을 둘러보며 순찰한다. 꿀호를 발견하고는 경계하듯 뚫어져라 쳐다본다. 마치 '나는 내 새끼들을 지켜야 해. 다가오지 마'라는 공격적인 표정이다. 아들은 '나는 널 공격하지 않아. 그냥 보는 거야'라는 진심 어린 눈빛으로 움직이지 않고 지그시 한참을 바라본다. 잠시의 정적 후 아빠새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돌리더니 가족이 있는 바다를 향해 총총 돌아간다.


아빠새가 호오르르 하는 소리를 내자, 엄마와 새끼들이 바다에서 해변으로 쪼르륵 몰려온다. 블랙스완 가족은 육지에 다시 모였다. 아빠새와 눈빛으로 교감을 한 꿀호도 괜찮다고 판단했는지 무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본다. 새들은 아들의 움직임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할 일을 한다. 해변으로 날아온 두 마리 갈매기가 저쪽 끝에서 관중이 된 듯 아들과 새들을 지켜본다.


블랙스완 가족이 원하는 것은 해변가를 따라 걷는 산책이었다. 새들은 일렬로 서서 해변가를 걷기 시작했고, 꿀호도 살며시 조심스럽게 무리 중간에 끼어본다. 무리는 싫지 않은지 아들을 끼어준다. 그렇게 8살 꼬마아이와 블랙스완 가족은 평화롭게 해변을 같이 걷는다.


아들이 새와 교감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동안 가슴 깊은 곳에서 묵직한 감동이 밀려왔다.

말없이 다가가고 서서히 스며드는 아들의 모습,

그리고 블랙스완과 나란히 걷던 그 뒷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따뜻해진다.


언젠가 골드코스트 브로드워터 파크랜드를 여행하게 된다면,

그곳의 블랙스완 가족을 찾아보기를.

그날 아들과 내게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을 안겨준 그 가족이

지금은 더 많은 새끼들과 함께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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