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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코스트 아쿠아덕 위에서, 아들의 첫 항해

8살 아들과 호주 한 달 여행 이야기 중 골드코스트 편

by 슬로우모닝

호텔 체크아웃 하는 날의 아침은 늘 분주하다. 특히나, 아빠가 빠진 여행이라면, 엄마의 손은 두배로 바빠진다. 텔레비전의 키즈채널을 틀어주고, 어제 대략 싸놓은 짐에 아침에 벗어놓은 잠옷과 세안도구, 화장품들을 주섬주섬 가방에 넣는다. 방과 옷장, 바닥을 샅샅이 살피며 혹시 놓고 가는 물건이 없는지 확인한다. 모든 정리가 끝나고, 한 손에는 캐리어를, 다른 손에는 아들의 손을 잡고 로비로 내려간다.


오늘 오후에는 골드코스트 지인이 호텔로 픽업을 오기로 했다. 짐은 잠시 호텔에 맡겨두고, 아들이 가장 기대하던 아쿠아덕 체험을 위해 서퍼스파라다이스로 향한다.


아쿠아덕은 도로에서는 버스로 달리고, 바다에서는 배로 변하는 수륙양용 차량이다. 서퍼스파라다이스에서 브로드워터까지 골드코스트의 명소를 한눈에 볼 수 있어, 가족 여행객이라면 꼭 한 번 타야 하는 인기코스이기도 하다.


아들 꿀호는 한국에서부터 이 날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골드코스트에 도착한 바로 다음날 타러 왔지만, 현장 예약이 마감되어 발길을 돌려야 했었다.

"엄마, 오늘은 진짜 탈 수 있는 거지? "

"그럼! 이번엔 엄마가 미리 온라인으로 예약해 놨어. 걱정 마!"

그제야 안심된 듯 꿀호는 환하게 웃었다.


트램을 타고, 익숙한 거리 카빌애비뉴에 내린다. 아침을 먹기 위해 길 건너 카페로 향하니, 커다란 배낭을 의자 옆에 내려놓은 여행자들로 북적하다. 그들의 대화와 흘러나오는 음악이 활기찬 아침 공기를 열어준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문득 내 20대가 떠올랐다. 워킹홀러데이로 처음 호주에 왔던 시절.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으로 호주 일주를 했지만,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는 건 사치였다. 그때 나의 아침은 마켓에서 산 식빵과 우유가 전부였다. 가난했지만, 행복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국을 여행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일이 설레는 환상적인 모험이었으니까.


식사를 마치고 예약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지난번에 걷지 못했던 서퍼스의 다른 거리를 걸어본다. 여행지에서 느껴지는 활기차고 쾌활한 공기, 신나게 걸어가는 꿀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아들, 이제 아쿠아덕 타러 가자"


사무실에서 예약을 확인하는 동안 아들은 근처 놀이터에서 놀고 있다. 잠시 후 직원의 안내에 따라 아쿠아덕이 있는 탑승장으로 이동한다. 오리 모양의 아쿠아덕이 눈앞에 보이자 보자 꿀호를 비롯한 아이들의 눈은 반짝인다. 모두 탑승이 완료되고, 차량은 서퍼스 해변 쪽으로 천천히 달린다. 활짝 열린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여름의 열기를 식혀준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손을 흔들고, 우리도 손을 흔들며 답례한다.


잠시 후 차는 브로드워터 입구로 들어선다. 엔진음이 바뀌고, 안내원의 외침과 함께 차량은 그대로 바다로 '풍덩' 탑승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육지를 달리던 차가 바다 위를 항해하자 꿀호의 눈은 휘동 그래졌다.


물 위에서 바라본 골드코스트 풍경은 또 달랐다. 어제 놀았던 브로드워터 파크랜드, 요트가 정박한 마리나 미라지, 초호화 고급 주택가들이 이어졌다. 안내원은 이곳에 호주 스타들과 할리우드 배우들의 별장이 있다고 했다. '다음 생엔 나도 누릴 수 있을까?' 하고 잠깐 생각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부자가 부럽지 않았다.


항해의 막바지가 다가오자 안내원이 아이들을 한 명씩 호명한다. 직접 운전대를 잡아보는 시간이다.

드디어 꿀호의 이름도 불려지고, 아들은 캡틴 자리에 앉는다. 옆에서 안내해 주는 할아버지 선장님의 도움을 받아 운전대를 조심히 돌리는 꿀호는 사뭇 진지하다. 체험이 끝나자 무언가 해냈다는 뿌듯한 미소가 입가에 번진다. 그 미소를 바라보는 엄마도 흐뭇하다.


아쿠아덕 운전대를 잡아보다


여정이 마무리될 때쯤, 아이들에게는 그럴싸한 '캡틴 자격증'이 수여됐다. 종이 한 장이었지만, 오늘 하루 바다를 항해한 선장의 역할을 톡톡히 한 상이다.


탑승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 도로 옆 건물에 'Wax Museum' 간판과 커다란 괴물 얼굴을 본 꿀호가 외친다.

"엄마! 저기 가고 싶어!"

"그래, 오늘은 네가 선장이야!"

그렇게 우리 모자는 또 다른 항해를 시작했다.




#아이와호주한달#골드코스트#아쿠아덕#호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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