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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코스트 왁스뮤지엄 그리고 소중한 인연

8살 아들과 호주 한 달 여행 이야기 중 골드코스트 편

by 슬로우모닝

왁스뮤지엄(Wax Museum)은 서퍼스파라다이스 중심에서 한 블록 떨어진 그 자리에 여전히 있었다.

15년 전에는 여러 번 무심히 지나쳤는데, 이번엔 아들 덕분에 그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아쿠아덕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괴물 조형물에, 아들이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기 때문이다.

"엄마, 저기 가보자!"


입구에 들어서자, 할아버지 직원이 환하게 인사해 준다.

"무서운 전시도 있지만, 어린이도 충분히 볼 수 있어요."

그 말에 일단 안심했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아들에게 물었다.

"공포방은 무서울 수도 있는데, 정말 괜찮겠어?"

"응! 볼래!"

괴물과 괴담에 흥미가 많은 아이였기에, 주저하지 않고 표를 구매한다.


공포방(chamber of horror)은 어둑했고, 음산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중세의 고문도구와 처벌 장면이 실감 나게 재현돼 있고, 가이드가 당시 시대적 배경과 고문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 시드니 하이드파크의 배럭 뮤지엄과 한국의 서대문 형무소가 떠올랐다. 진지한 태도로 전시를 관람하는 아들, 영어를 못 알아듣지만 관심 있는 전시에 대해서는 엄마에게 다가와 살짝 물어본다.


투어가 끝나고 올라간 2층에는 약 100여 점의 밀랍인형이 전시되어 있다. 오바마 대통령, 찰리채플린, 조니 뎁... 꿀호는 사람처럼 서 있는 밀랍인형들을 신기한 듯 바라본다.

"이 사람은 최초로 달에 간 닐 암스트롱이야."

내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들을 보며, 이제 이런 전시도 함께 볼 수 있고, 앞으로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는 생각에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관람을 끝내고 꿀호가 좋아하는 요치를 먹으며 잠시 쉬다, 오후 약속을 위해 호텔로 향했다.




로비 소파에 앉자마자, 전화가 울렸다.

"린다야, 어디야?" 정말 오랜만에 영어 이름을 들어본다.

"언니! 우리 호텔 로비에 있어!"

"지금 그 앞이야"

문을 열고 나가자, 차에서 내린 언니는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그대로였다. 마른 체형, 어깨까지 내려오는 파마머리, 미소까지.


몸은 멀리 있었지만, 마음은 늘 가까웠다.

생일이면 축하메시지를, 연말이면 안부를 전하며 끊기지 않았던 우정.

호주에서 만난 수많은 인연 중, 지금까지 이어지는 몇 안 되는 소중한 사람.




차를 타고 가는 길에 언니가 물었다.

"소주는 사놨는데 혹 다른 술 마시고 싶은 거 있어?"

"언니, VB 사자" 리쿼샵에 들려 나의 최애 맥주, 빅토리아 빅터 한 팩을 산다.

15년 전에도, 지금도 변함없이 내가 좋아하는 쌉쌀한 맛

"와, 여기가 새로 지은 집이구나."

평화로운 주택가 한켠, 햇살이 고요히 머무르는 복층 주택. 현관을 들어서자 하얀 가구로 통일된 거실이 단정하고 포근하다. 바닥을 따라 이어진 복도를 걷자, 눈앞이 환히 열렸다. 탁 트인 통창 너머로 수영장과 잔디밭이 한 폭의 풍경처럼 펼쳐져 있다.

집 안 구석구석에는 언니의 결이 고스란히 스며 있었다.

"정말 멋지다!"

타국의 낯선 땅에서, 한 채의 집을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쌓였을까. 그 마음이 전해져 가슴이 묵직해졌다.




꿀호는 형과 누나에게 인사를 건네고, 곧 형과 잔디밭에서 공을 갖고 놀며 금세 친해졌다. 한국인 형을 만난 꿀호는 신이 났다.


이안이 형과 꿀호

언니가 정성스레 차린 저녁상 위에는 소고기 샤부샤부와 신선한 연어회, 그리고 회덮밥까지 한 상 가득 차려졌다. 한 때 5성급 호텔 요리사로 일했던 형부께서 회를 직접 먹기 좋게 썰어주셨는데, 입안에 넣자마자 살살 녹아내렸다. 골드코스트에 온 뒤 처음으로 맛보는 집밥이라, 꿀호와 나는 그 어떤 레스토랑의 음식보다 맛있게 먹었다.


20대엔 젊은 패기만으로 이곳에 와서 함께 웃고 울었는데, 이제는 아이를 키우며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 다 키우면, 같이 여행 가자."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마주 앉은 우리,

젊음의 추억은 어느새 성숙한 삶이 되어

서로의 시간을 다정히 안아주었다.



#아이와호주한달살기#골드코스트#호주여행#왁스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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