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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퍼스파라다이스에서 버거 한 입과 추억 한 컷

8살 아들과 호주 한 달 여행 이야기 중 골드코스트 편

by 슬로우모닝

'Betty’s Burgers? 처음 보는 이름인데?'

구글로 검색하니, ‘호주에서 꼭 먹어봐야 할 햄버거’라는 추천들이 많다. 그럼 오늘 점심은 여기로!


양쪽으로 활짝 열린 출입문 사이로 파스텔 빛 레트로 스타일의 인테리어가 시선을 잡는다. Betty’s Burgers 라고 쓰인 주황색 간판은 해변 햇살처럼 상큼하다. 매장 스피커에선 60~70년대 복고풍 음악이 흘러나오고, 청책 티셔츠 유니폼을 입고 주문을 받는 직원은 늘씬한 몸매와 황금빛 머리카락, 파란 눈이 미국 영화 속 여 주인공을 연상케 한다.


점심때가 훨씬 지난 늦은 오후라, 두 팀 정도가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고,

비둘기 두어 마리가 널찍한 매장에 성큼성큼 들어오더니,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빵 부스러기를 쪼아 먹는다.

사람과 비둘기와 같이 식사하는 매장은 서퍼스이기에 가능하겠지.


창가에 자리를 잡고 찬찬히 메뉴판을 보니, 맥주가 눈에 띈다.

‘오, 피맥(피자+맥주) 대신 햄맥(햄버거+맥주)도 좋지.'

입꼬리가 올라간다. 햄버거 집에서 맥주를 마시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웬 떡인가 싶다.

시원한 맥주 한 캔과 아들을 위한 오렌지 주스를 곁들인 버거 2세트를 주문했다.


피터팬을 연상케 하는 순진무구한 외모의 청년이 햄버거 2개와 감자튀김이 수북이 담긴 쟁반을

환한 미소로 가져다주고, 이런저런 말을 건넨다.

손님수가 직원수와 비슷한 한적한 오후 시간이라 그런지,

골드코스트라 그런지 아니면 두 가지 이유를 다 포함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1:1 케어처럼 느껴지는 직원들의 친절함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쟁반에 담긴 갓 튀긴 프렌치프라이의 고소한 냄새가 후각을 깊게 파고들고,

아들 꿀호는 손을 뻗어 감자튀김 한 개를 잽싸게 입으로 가져간다.


“아 뜨거워!... 맛있어!!” '뜨거우니 조심해'라고 말하려는 순간 이미 꿀호의 입으로 들어간 감자튀김은 아들의 혀를 공격했다. 그러나 곧 사각사각 맛있게 먹는 소리가 입에서 연속으로 터져 나온다. 금세 비워진 그릇, 그리고 엄마의 감자튀김을 바라보는 아들의 눈이 포착된다.

“많이 먹어” 아직 손대지 않은 감자튀김 한 접시를 아들 앞에 기꺼이 내어준다.


야금야금 잘 먹는 아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맥주캔을 따고 한 모금 크게 꿀꺽 들이킨다.

베티스버거 자체 브랜드 맥주인데, 시원하고 짜릿한 청량감이 누적된 갈증을 한 번에 해소해 주었다.

목을 축이니 배에서 음식을 달라고 요동을 친다. 햄버거 빵에서 향긋하게 올라오는 불향 냄새를 맡으며 한 입 베어문다. 잘 구워진 패티에서 흘러나오는 육즙과 토마토·치즈·양상추가 특제 소스와 함께 버무려져 입안에서 춤을 춘다.


“엄마, 정말 맛있어!”하고 아들이 두 번째 외친다.

햄버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아들인데, 오늘은 연거푸 엄지를 치켜드며 먹는다.

2인분의 감자튀김을 다 먹고, 햄버거를 연이어 먹는 아들의 입술 옆으로 소스 자국들이 점점 진해져 갔다.

오물조물 맛있게 먹는 그 작은 입이 귀엽다.

'네가 맛있게 먹으면, 엄마는 그게 행복이야'


늦은 점심을 먹고 나오자, 바로 옆 건물에 요치(Yo-Chi)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프리미엄 프로즌(얼린) 요거트 카페로 원하는 요거트와 토핑을 그릇에 담아 나만의 수제 요거트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디저트 가게이다. 시드니에서는 줄이 길어 못 먹었던 곳이라 반가웠다.

아들에게 요거트 종류와 토핑을 선택할 수 있는 전권을 주자

망고 요거트 위에 딸기 한 가득과 초코 한 움큼, 알록달록 색깔의 젤리를 산처럼 쌓는다.

좋아하는 토핑을 잔뜩 넣어 만든 아이스크림 같은 요거트 한 컵으로 아들은 세상을 다 갖은 미소를 띠며

한 숟가락 크게 떠먹는다. “으음” 기분 좋을 때 나오는 꿀호의 콧소리다.


햇살은 점점 황혼으로 기울고,

서퍼스파라다이스 거리는 한 개씩 두 개씩 켜지는 가게들의 조명 빛에 반짝거린다.

해변으로 걷는 거리는 퇴근 후 시간이라 더 북적거렸고, 평일이라도 늘 주말 같은 서퍼스 중앙 거리에는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사람, 재밌는 묘기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는 길거리 예술가가 보인다.


공연을 보는 관객들, 지나가는 사람들, 저녁식사를 즐기는 가족들, 가게를 구경하는 관광객들로

거리는 점점 가득 채워졌고, 기분 좋은 저녁 소리가 음악이 되어 꿀호의 발걸음은 리듬을 탄다.

달리다가 멈추고, 빨리 걷다 느리게 걷다 하는 아들을 놓칠까 봐 엄마는 그 뒤를 바싹 쫓아간다.


어느새 서퍼스파라다이스 해변에 닿았다. 찰랑거리는 파도소리가 배경음이 되고,

모래사장에 옹기종기 앉아 이야기하는 사람들, 해변을 걷는 연인들, 사진을 찍는 이들이

그림자가 되어 밤바다의 운치를 더해준다.


아들과 엄마는 연인이 되어 '나 잡아봐라'를 외치며 해변을 신나게 달린다.


'기억에 남을 사진 명소가 어딜까? 아, 거기가 있었지!'

파란 조명이 빛나는 'SURPERS PARADISE’ 표지판 앞 바로 여기다.

15년 전과 디자인은 달라졌지만 위치는 그대로다.

아들을 그 앞에 서게 한 다음, 핸드폰 셔터를 찰칵찰칵 여러 번 누른다.

“엄마도 결혼하기 한 참 전, 여기서 찍은 사진이 있어”

촬영을 끝내자, 꿀호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만의 춤을 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꿀호의 막춤에 미소를 짓는다.


찰칵, 한 번 더. 마음속 사진 한 장 완성.

바다와 파도소리, 서퍼스파라다이스 거리의 즐거운 잡음들

그리고 흥겹게 몸을 흔드는 진주같이 빛나는 너

언젠가 세월이 많이 지나 너와 함께 여행을 할 수 없는 그런 날이 오면,

엄마는 마음속 앨범에서 오늘 저장해 놓은 이 사진을 꺼내어 활짝 펼쳐볼 거란다.

사랑한다. 아들.


#골드코스트#아이랑호주한달#서퍼스파라다이스#베티스버거#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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