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아들과 호주 한 달 여행 이야기 중 골드코스트 편
골드코스트의 상징, 서퍼스 파라다이스(Surfers Paradise)는 서퍼들의 천국이자 여행자들의 낙원이다. 길게 펼쳐진 해변에는 로컬들과 관광객들이 섞여 아침 조깅을 하고, 해변가에 늘어선 카페와 식당에서 커피와 늦은 아침을 즐기는 여유롭고 평화로운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모네의 트루빌 해변 그림을 떠오르게 한다.
도착 둘째 날, 아들과 서퍼스 파라다이스로 향했다. ‘사우스포트만큼 여기도 많이 변했을까?’ 궁금함을 한가득 안고 호텔 앞 트램 정거장에서 G-link를 처음으로 타본다. G-link가 들어서기 전에는 버스나 택시가 이동수단이었는데, 트램이 생기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우선 배차 간격이 짧아 시간을 체크하지 않아도 되고, 지상 위로 달리는 교통수단이다 보니 창문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이 좋다. 특히나, 관광객들에게는 버스가 가장 난이도 높은 이동수단인데, 트램에서는 도착할 정류장을 미리 화면으로 알려주어 익숙하지 않은 영어방송에 귀 기울여야 하는 긴장감도 없다. 내 나라처럼 편안한 여행이 된다. 교통비는 단돈 50센트.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500원 정도, 서울 대중 교통비보다 훨씬 저렴하다.
퀸즐랜드 주가 차량정체 완화, 물가상승으로 인한 시민들의 생활비 부담 경감 및 탄소배출 감소를 목적으로 작년부터 대중 교통비를 50센트로 대폭 내렸다. 그 효과가 아주 좋아 시범적으로 운영했던 정책은 이제 영구적으로 운영된다. 이런 배경을 알고 나니, 역시 선진국이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시드니를 여행할 때는 하루에 인당 최소 20달러씩 소비되었던 교통비가 골드코스트에서는 1달러로 해결되니 물가 비싼 호주에서 그것도 퀸즐랜드주에서만 누릴 수 있는 아주 큰 특혜이다.
그렇게 50센트의 행복을 누리며, 4 정거장을 지나 서퍼스 파라다이스의 중앙거리라고 할 수 있는 카빌애비뉴(Cavil Avenue) 역에서 내린다. 몰라볼 정도로 발전한 사우스포트와는 다르게 익숙한 분위기와 거리다. 기념품 가게들도 예전 위치 그대로이고, 확성기로 나오는 기계음은 여전히 거리에 울려 퍼지고 있다.
“G’day, mate! Sale’s on, grab your souvenirs!
Sandcastle keyrings, just five dollars!
Mini surfboards, twelve dollars each!
Don’t miss out, limited stock, hurry on down!”
(기념품 사세요, 모래성 열쇠고리가 5달러, 미니 서핑보드는 12달러입니다.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몇 개 안 남았어요. 서두르세요.)
가게 안을 들어가 본다. 코알라와 캥거루 인형들, 열쇠고리, 모자, 선글라스 등 익숙한 기념품들이 여전히
가판대에 알록달록 수북이 진열되어 있다. 한 참을 구경하는데, 이미 한 바퀴를 쓱 돌아본 아들이 다가오더니,
"엄마, 내가 맘에 드는 장난감은 하나도 없어." 하고 말한다. 뭔가 하나라도 건지려고 했던 아들은, 기분 좋게 들어왔다가 흥미를 끄는 물건이 없다는 사실에 실망이 가득한 얼굴이다.
"아들, 여기 근처에 큰 오락실이 있는데 거기 가볼까?"
"어! 좋아!"
8살 남자아이가 여행 동반자가 아니었다면, 갈 일 없는 오락실이지만, 아들 기분이 좋아야 여행도 즐거워지니 일단 기분 전환으로 제안을 해본다. 호주에는 타임존이라는 오락실이 여러 군데 있는데, 이곳 서퍼스에도 있다. 오늘 서퍼스에 나간다고 하니, 골드코스트에 거주하고 있는 오랜 지인이 잊어버리고 있었던 타임존을 알려주었다. 청춘시절 주말 저녁이면 골드코스트에서 가장 번화한 서퍼스파라다이스에 나와, 한 번씩 방문해서 즐겼던 곳이라 의미 있는 추억 장소이기도 하다.
건물 2층에 들어서자 화려한 조명과 불빛들, 여기저기서 삑삑 거리는 기계음 소리가 아케이드 복도까지 퍼져 나와 아주 오랜만이지만 쉽게 타임존을 찾아갈 수 있었다. 아들의 최애 오락기는 오토바이 경주다. 3살 때부터 꿀호는 오토바이 덕후였다. 지나가는 오토바이가 있으면 시선에서 안 보일 때까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고, 거리를 걷다 배달 오토바이라도 만나면 아저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붙박이처럼 서 있었다.
그랬던 아들이 8살이 된 지금은 다른 방법으로 오토바이를 사랑한다. 오락실에 오면 첫 게임은 무조건 오토바이 경주이다. 좋아하는 빨간색 오토바이를 타고 몸에 무게를 실어 방향을 좌우로 틀면서 운전을 제법 한다. 모니터의 오토바이는 시원하게 도로를 질주한다. 시무룩했던 얼굴은 금세 밝아졌다. 게임을 위한 카드 충전은 여러 번 계속되었고, 내 집처럼 오락실을 휘젓고 다니며 깔깔거리는 아들을 보며 엄마의 마음도 즐거움이라는 파도를 신나게 타고 논다. 그날 타임존은, 아들의 에너지를 가득 채우는 충전소 역할을 해주었다.
한바탕 신나게 놀고 기분이 좋아진 꿀호는 1층 젤라토 가게에서 산 망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흥얼거린다. 건물에서 나오자 뜨거운 햇살에 눈이 부시다. 거리는 아까보다 더 활기차졌다. 선글라스를 얼른 끼고 다시 카빌애비뉴를 걷는다. 익숙한 향기를 따라가듯, 어느새 젊은 시절 매일 출퇴근했던 낯익은 거리를 걷고 있다. 여기다. 내가 일하던 곳, 2층짜리 아케이드 건물은 그대로였다. 1층 식당들도 메뉴는 바뀌었지만 여전히 음식점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2층에 있어야 하는 회사의 간판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를 버티지 못한 걸까? 같이 일하던, 미셀 실장님은 어디로 가셨을까? 나보다 훨씬 나이 많은 상사였지만, 때로는 엄마같이 때로는 친구같이 지냈던 찐한 인연이었다. 영원할 것 같았는데, 서로를 보지 못하는 15년의 시간 동안 우리 인연의 끈은 희미하게 바래서 끊어졌다. '린다야' 나를 부르는 실장님의 목소리가 바람결에 들리는 듯하다. '실장님, 잘 지내고 계시나요? 보고 싶네요'
사무실이 호주 골드코스트 서퍼스파라다이스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거리를 매일 걸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의 청춘은 아름다웠다. 한 참을 무언가를 찾듯이 다른 회사가 된 사무실 통창 유리로 안을 들여다본다. 저쪽 끝이 내 자리였는데... 사무실 책상에 앉아 일하는 20대의 내가 40대가 되어 바라보는 지금의 나를 환한 미소로 반겨준다. 잘 왔다고.
낯선 땅에서 참으로 씩씩하고 용감하게 살았던 네가 있었기에, 지금의 단단한 내가 그리고 엄마가 될 수 있었던 거겠지. 분명, 그때 너도 힘들고 아픈 적이 많았을 텐데, 다행인지 나는 너의 반짝이고 이쁜 모습만 기억이 난다. 고맙다. 치열하고도 열심히 살아준 내 청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