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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자 Mar 23. 2021

미워해야 산다면

미움이 향하는 곳에 무엇이 있나요

미워해야 산다면

미움이 향하는 곳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다면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늘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언가 싫어하는 마음은 좋아하는 것 이상의 에너지가 필요해서 나는 미워하는 일이 무서웠다. 미워하는 건 난데, 내가 더 아플 테니까. 어두운 마음은 끝없는 수렁 같다.


미워해야 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영 미워지지 않아 힘들었다. 왜 밉지 않았는지 알고 있다. 나는 나를 미워했다. 내 작은 실수가 흠이 되어 이런 일이 생긴 것 아닐까, 나는 티끌 같은 자신의 잘못을 찾으려고 혈안이 된 사람 같았다. 내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므로 발생하는 모든 나쁜 일의 원인은 나에게 있을 게 분명했고, 내 인생은 왜 이럴까 싶은 마음에 슬프기만 했다. 화살을 타인에게 돌릴 힘도 없었다. 너무 오만해도 타인이 보이지 않지만, 자존감이 너무 낮아도 타인이 잘 보이지 않는다. 나를 아끼지 않으면 누군가를 미워할 수 없는 법이다.


타인을 미워하는 일은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지만, 미워할 줄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미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도 있다. 그즈음의 지인들은 매번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라는 말을 했다. 이해할  없는 것을  탓으로 만들어서 이해해내지 말라고. 스스로는 그런 결과값에 도달하지 못하던 나는 그런 말들이 고마웠다. 덕분에 이제는 이해하지 않고도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이 이해받을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논리를 찾으려는 성격이 독이 되기도 한다.


오늘 아침에 눈을 떴는데 슬프지 않고 화가 났다. 화가 나서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그러고 보면 친구들은 화를 냈었고, 미움이 향할 곳을 알았다. 나를 답답해하면서 입을 모아 그 일은 정상이 아니고 상식 밖이라며 하나하나 짚어서 설명해줬다. 소름 끼치는 일이라고. 나도 안다. 이제는 그 사람을 미워할 수 있고, 그 일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소름 끼친다.


상대가 들이받아도 가만히, 다 지나갈 거라고 믿으면서 모른 척하다가 참기 힘들어졌을 땐 그저 비켜섰다. 그때도 미운 말은 못 했다. 그냥 떠나 만 달라고 했다. 이제 와서 화가 난다니 뒤늦은 변덕이지만, 드디어 내가 나를 좀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나를 위해서 화를 낼 수 있게 됐다고. 아무 말도 없이 시비를 참아왔던 것이 억울해져서 억울하다는 말도 하고 싶었다. 내 인생에 허락 없이 들어와 깽판 치고 사라진 사람의 잔해를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는 게.


정말 화도 내 보고 싶었지만, 부딪힐 일은 아니었다. 이 상황은 도가 지나쳤고, 이해할 수 없으며, 나는 상당한 괴로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곧 관계자에게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진작에 답을 구했으면 괴롭지 않았겠구나 싶었다. 애초에 본인이 선을 넘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일들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나에게 화를 내고 시비를 걸었다는 걸 알았다. 디지털 스토커처럼 내가 하는 일을 쫓아다니다가 못 참겠는지 선을 넘고 사적인 영역에 들어와 더 많은 정보를 캐내고 확대 해석했다. 아무 이유가 없던 일까지 나를 미워하려고 작정한 듯 능동적으로 오해를 시도한 것 같았다. 그 사람은 자주 실수했고, 나는 그 실수를 모르는 척했다. 그땐 순간의 잘못일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주변을 상처 주면서 그 고통으로써 구원받기를 바랐던 걸까.


나는 미워해야 겨우   같았는데,  사람은 미워하는 마음에 사로잡혀 질식할  같았을 테다. 알고 있다. 미워하는 마음의 고삐를 잡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악독하면서도 처량한지. 그래서 미워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불행한 사람을 미워하는  쉽지 않다. 내가 그때 얼마나 불행한지 알았다면  사람은 나를  미워했을까. 아니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싫어했을 거라는 것도 안다. 그녀의 극단적인 선택을 보면 구제의 여지는 없는  같다. 사실 화가 처음 났던 순간부터 밉기는커녕 기분이 좋다. 구제불능의 한심한 상대는  이상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상대가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전의를 잃기 마련이다. 나는 전의가 생기자마자 전의를 잃었고,   "씨발, 존나" 장난스레 말하자 그전부터 몸집을 키워오던 슬픔을 멀거니 바라보는 일이  사건을 계기로 끝났다는  깨달았다.


잘 미워할 수도 있는 법이다. 방향을 제대로 잡은 미움은 빠르게 소멸한다. 폐허가 된 못난 마음과는 다르게.




https://www.instagram.com/jaen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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