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은 새를 모른척하고 퇴근할 수는 없었다
날지 못하는 작은 새를 발견했다. 퇴근 전 활짝 열어뒀던 옥상문을 닫고 잠그려는데 문 앞에 앉아있었다. 움직이지 않아서 죽었나 하면서 가까이 다가가는 찰라 고개를 좌우로 움직였다. 죽어있었다면 안타깝지만 조심스럽게 들고 가 화단에 묻을 수는 있었을 거다. 그런데 아직 살아 있다. 내가 다가가도 움직이지 못하는 아주 작은 새가.
아 어떡하지, 죽어가고 있는 걸까. 어떻게 해야 살릴 수 있지. 병원에 데려가야 할까. 여기까지가 너의 운명이라고 모른 척해야할까. 그런데 이 작은 새를 모른척하고 문을 닫고 퇴근할 수는 없었다. 문을 닫을 수가 없으니까. 닫으려면 문 앞에 웅크리고 있는 작은 새를 들어서 치워야 하니까. 눈물이 났다.
옆방에서 일하는 선생님에게 달려가 흐느끼면서 말했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 저기 아픈 새가 있어요, 어떡하죠?
그이는 산에 많이 다니는 사람이니까 왠지 어떻게 해야할지 잘 알지 않을까. 자세히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고 안녕, 하고 인사한 뒤 조심조심 다가갔다. 잡으려고 했더니 파다닥 30센치쯤 날아올라 한 발짝 떨어진 곳으로 갔다. 날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선 이번엔 재빠르게 두 손으로 잡아 올려 다리를 다쳤나 살펴봐주셨다. 상처 없고 피도 안 나니 크게 다친 건 아닌 거 같다고. 박새라고 했다.
- 어디 상자 없을까?
- 큰 거요, 작은 거요?
- 편안하게 느낄 수 있을 만한 크기면 돼요
재활용 분리수거장에 상자들을 본 기억이 났다.
- 네네, 챙겨올게요.
급하게 상자를 들고 뛰어 올라갔더니 그이는 한 손엔 새를 쥐고 한 손으로 작은 종지를 꺼낸다.
- 쌀 있으면 빻아서 주자. 물그릇은 이걸로 하고, 박스에는 숨구멍을 내줘야해. 새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닫아 놓을 거거든.
다행히 점심시간에 밥을 해먹은 적이 이어서 누군가의 쌀이 남아있다. 일단 좀 빌릴게요. 가위로 상자의 네 면을 푹푹 찔려 구멍을 냈다. 숟가락 뒷면으로 꾹꾹 눌러 쌀알을 부쉈다. 그이는 한 손에 상자를 들고 나는 물그릇과 쌀그릇을 들고 그이 방으로 따라갔다. 좀 쉬게 해주고 원기를 회복하면 괜찮아질 거 같다고, 불안해서 파닥파닥 거리면 자꾸 다른 데 부딪혀서 더 다치니까 움직이지 않도록 상자에 넣어주고, 밖은 너무 추우니까 따뜻한 곳에 두자고.
- 그릇들 먼저 상자 한켠에 넣어. 그리고 우리는 동시에 후다닥 상자를 덮는 거야. 새가 날아가지 않도록.
작은 새야, 놀라지마. 미안해. 나쁜 사람들 아니야. 조금만 참아. 눈물이 계손 난다.
- 이제 퍼드득 거리지 않잖아. 쉬고 있는 거야. 박새를 발견해서 다행이네. 잘했어. 이제 기다려보자.
작은 새를 그이에게 맡기고 퇴근했다.
며칠 전 길가에서 햇볕을 쬐며 앉아 있는 깡마른 고양이를 봤을 때도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아픈 고양이면 어떡하지? 병원에 데려가야 하나, 마음은 좀 아프지만 내가 너희를 다 구원할 수는 없으니 모른 척 해야 하나.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지만 두려워서 아예 멀리서부터 돌아가 버린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 걸까. 병원에 데려가는 일까지는 하지 않을 게 분명한 나의 행동이 예상되어서 미리 죄책감을 느끼고, 아픔과 죽음을 지켜보는 일이 힘들다. 당장 죽어가는 건 아니지만 다쳐서 아파하고 있으면, 생명에 위험을 느끼는 존재가 있으면 구해야 하는 건데, 그 당연한 일을 하지 않을 거 같아서 그 상황에 직면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 이렇게 고백하고 나니 너무 이상하다. 길에서 숨이 아직 붙어 있지만 죽어가는 고양이를 발견한다면 어떻게 할까. 이미 나는 한 번 모른 척 했다. 출근길에 운전하는 차 안이라는 핑계를 대 보지만 방금 사고가 난 듯 움직이고 있었다. 길에서 동물의 사체를 발견할 때마다 먹먹한 마음이 들지만 아직 움직이고 있는 동물을 그냥 지나친 건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 그런데 그때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만 흐르지 잘 모르겠다. 지나가는 차에 더 이상 밟히지 않도록 옆으로 옮겨두기, 사고가 경미한 경우에는 병원에 데려가서 치료하기. 그런데 내가 이 동물을 구조하고 책임질 수 있을까, 책임지지 못할 경우에는 그냥 두는 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
약해 보이는 고양이가 아플지도 모르니까, 아픈 존재를 마주하는 건 힘든 일이니까, 아프면 내가 병원에 데려가지 못한다는 사실이 죄스러우니까, 병원비를 부담할만큼 너를 책임지고 싶지는 않으니까, 다가가지도 않는 건 좀 이상한 거 같기는 하다. 아픈 존재를 마주하는 것이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완벽하게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 문제를 다 해결해야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는 각자 할 수 있는 몫이라는 게 있으니까 내가 뭘 잘못한 건 아니잖아. 아픈 고양이를 외면하는 게 잘하는 짓도 아니지. 아픔과 죽음을 너무 두려워해서 그런 건가. 아빠가 돌아가신 뒤 그렇게 된 건가. 모르겠다.
작은 새는 잘 쉬었다가 기운차려 멀리멀리 힘차게 날아갔다고 한다. 내 덕분에 살았다고 그이가 말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