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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dac May 04. 2020

추우면 춥다고, 더우면 덥다고 해

더욱 자유롭게 감각하기를, 남을 의식하지 않기를.

모악산에 다녀왔다. 친구들과 어디에 갈지, 무얼 먹을지, 며칠이나 같이 지내게 될지 계획을 세우지 않았던 터라 오늘의 산행이 갑자기 정해졌다. 출근하는 날인데다가 정확히 역할분담을 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야근까지 하게 될 것 같아서 산에는 친구들끼리만 다녀오라고 하려다가 오후 휴가를 내고 나도 산에 가기로 정했다.

미리미리 계획하지 않아서였을까, 여전히 무기력과 우울한 기분에 빠져있기 때문일까, 오후에 산에 간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나보다. 챙겨 입은 기능성 티셔츠는 여름용이 아니었고, 바지도 그냥 어제 입던 청바지를 그냥 입었다. 바람막이용으로 얇은 겉옷을 챙겼는데 그것도 꽤 두터웠다. 하긴 그냥 출근을 할 때도 오늘의 날씨가 어떤지 예측하고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정하는 게 너무 어려워서 대충 입다보면 추운날 반팔을 입기도 하고, 더워지는 날 패딩을 입기도 했다.

별 다른 말 없이 휴가는 결재가 났고 친구들을 태워 전북도립미술관으로 갔다. 일 년 넘게 출퇴근을 하는데도 운전이 여전히 부담스러워서 친구들을 태우고 시내를 관통하는 일이 긴장되었다. 무사히 주차장에 도착해서 산행을 준비하는데 내 복장이 적당한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같이 간 친구들은 겉옷이 너무 두꺼우니 두고 가자고, 걷다보면 금새 더워진다고 말했다. 괜찮을 것 같았지만 친구들 말을 듣고 겉옷은 두고 살짝 두꺼운 긴팔옷을 입고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한참을 오르니 금방 더워졌지만 힘들어서 좀 쉴 때면 땀이 식으며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한기가 느껴질만큼은 아니다. 친구들은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에서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상쾌하게 좋은 기분을 만끽한다. 나도 그 바람이 좋기는 하다. 그런데 이게 적당히 시원한지, 추워서 옷을 입고 싶을 만큼인지, 더워서 벗어야 할 정도인지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해서 행동을 내리기가 너무 어려운 거다. 나는 어지간하면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남들이 덥다고 하면 그래 더운가보다 하고 춥다고 하면 추운가보다 했던 거 같다. 추우면 입고 더우면 벗으면 되는데 더운지 추운지 잘 모르겠다. 추위를 잘 탄다고 말했으니까 추워해야 하는 것 같고, 남들이 안 더워하고 있으면 나도 안 더워야 한다고 자기도 모르게 생각해버리는 것 같다.

예전에 한의원에서 뜸을 맞다가 화상을 입은 기억이 난다. 뜨거우면 말하라고 뜸을 치워주겠다고 하셨는데 뜸이 원래 뜨거운 거니까 어느 정도 뜨거울 때 치워달라고 말해야하는지 몰라서 그냥 참고 있었다. 뜨겁긴 했지만 참을만 했으니까. 그러다가 심한 화상을 입었다. 감정도 마찬가지. 기쁘고 슬프고 즐겁고 화나고 짜증나는 다양한 기분들을 적확하게 느끼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순간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 때문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 표현하는 데 저어하는 마음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상담 받을 때도 생각하지 말고 어떤 느낌인지 말해보라고 할 때가 대답하기 어려웠다. 있는 그대로 감정을 감각하는 것. 그걸 지금까지 잘 못해왔다면, 이제부터라도 적극적으로 연습해서라도 해보려고 한다.

산을 오르는 중에는 조금 덥기도 조금 춥기도 했다. 잠시 쉬면서 땀이 식을 때면 춥다고 느끼기도 했는데 옷을 입을 만큼은 아니었고, 바람이 많이 불어올 때면 추워서 옷을 입었다. 아! 생각해보니 혼자서 여행을 할 때는 더욱 자유롭고 편안하게 더욱더 자주 조금 추워도 입고 조금 더우면 벗고 하는 식이었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것이었나보다. 더욱 자유롭게 감각하기를, 남을 의식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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