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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dac Jun 19. 2020

뭐가 되었든 정말 제대로 해보고 싶다

장래희망은 송은이지만, 일단 오늘은 무력해도 괜찮아. 

회사에서 퇴근 시간을 기다릴 때는 시간이 그렇게도 안 가더니, 집에서 쉬고 있으니 어느새 일주일이 다 지나가버렸다. 오늘도 느지막히 일어나 아침을 지어먹고, 별로 한 것 없는 하루가 지나갔다. 할 일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는 하루. 아주 우울하진 않지만 살짝 무기력하고 의욕 없는 시간. 그냥 힘들지 않은 마음으로 지켜봤다. 트위터를 보고, 유튜브를 약간 보고, 책을 읽어볼까 하고 뒤적거리다가 말고, 낮잠을 자고, 할 일이 없으면 또 밥을 먹고, 뭔가 더 먹을 게 없나 찾아보다가 수박을 먹고...


완주군에서 2차 재난지원금을 1인당 10만원씩 지급했다. 주소별로 할당된 날이 오늘이었다. 지난번 1차 때에는 출근하느라 지정된 날에 못 가고 그 주의 주말에 갔었는데 이번에는 오늘 안 가면 어짜피 내일, 자가 격리로 내내 미룰 게 아니라면 다녀오는 게 나을 거 같아서 점심즈음 지정장소에 잠깐 외출했다. 마스크를 쓰고 조심하고 말도 조금만 하려고 노력했다. 


시간이 있으니까 우리 가지를 동물병원에 데려가고 싶은 마음도 사실 꽤 커졌는데, 만약에 만약에 내가 확진자가 되어 동선을 공개해야한다면 병가라고 집에서 자가격리 하랬더니 동물병원에 돌아다녔네, 하고 비난 받을까봐 걱정되어서 못 갔다. 그 보다 더 큰 건 정말 내가 확진자라면 여기저기 바이러스 뿌리고 다니면 안 되니까 심심해도 그냥 집에 얌전히 있어야지. 인터넷도 안 되는 집에서 느린 휴대폰 데이터로 트위터나 보면서... 


심심하니까 계속 뭘 찾아 먹게 된다. 다행히 집에 먹을 게 많이 없어서 밥만 먹는다. 하하하. 저녁엔 그래도 뭔가 너무너무 궁금해서 뒤져봤더니 언젠가 친구가 베트남에서 사온 새우칩이 나왔다. 재미삼아 기름에 한 번 튀겨먹었었는데, 집에서 튀기고 기름을 처리하는 게 너무 번거로워서 잊고 있다가 오늘처럼 심심한 날에 다시 생각이 난 거다. 에어프라이어에 돌리듯이 오븐에 구워볼까 하고 기름을 발라 오븐에 넣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기름에 튀길 때도 엄청 빨리 넣자마자 부풀어 올라서 꺼내야 하는 것처럼 오븐에도 짧게 넣었어야 하는데... 한창 딴 일 보다가 탄 냄새에 깜짝 놀라 오븐을 보니...정말 새카만 숯덩이가 되어 있었다. 급하게 꺼내서 버리고, 환기를 시키고, 심심한 하루에 꽤 강렬한 이벤트가 되었다. 그러고도 잠시, 다시 누워서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내일의 상담, 내일의 회의도 가지 않기로 했다. 확실하게 이번주는 내내 쉬어주는 걸로. 콧물이 아직 살짝 나기도 하니까. 집안은 매주 지저분해서 보고 있기 힘든데, 청소하기는 더 귀찮으니까 모른 척 하고 있다. 


그래도 반가운 사람에게 7월의 섭외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예전부터 정해져있던 일이기는 했는데 구체적인 날짜와 내용을 전달받아서 아주 잠깐 즐겁게 일하는 기분이 들었다. 2주 후니까 다음주에 정상모드로 돌입해서 잘 준비해야지. 


KBS 다큐인사이드 <개그우먼>이라는 프로그램을 다시 보기로 봤다. 공채 여성개그맨1호 이성미, 송은이, 김숙, 박나래, 김지민, 오나미를 인터뷰한 다큐프로그램이다. 우스개소리로 장래희망이 송은이라고 말하고 다니는데, 다들 자기 자리에서 버티고 꿈꾸면서 자기 일을 찾아내는 사람들이다. 세상을 변화시키기도 하고.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봤을 때처럼 깊이깊이 생각하게 된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지,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어떻게 살까. 우선은 오늘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사는 건데 그래서 이렇게 약간 무기력하지만 감당할만한 외로움과 우울을 잘 다스리면서 오늘을 잘 보냈다. 그렇지만 송은이가 비밀보장을 시작한 것처럼, 송은이가 가장 좋아하고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일이 웃음을 전하는 일이라는 걸 알아차렸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내 일을 찾고 정진하고 싶다. 그런데 어쩜 김숙처럼, 오래 무명시절을 겪고 일이 잘 안되고 이게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어떤 상황인지, 나는 무엇인지, 생각이 너무 많은 것이 단점이라고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생각하고 정리하고 다짐하는 걸 좋아하니까 깊이깊이 생각해봐야지. 


지금 하는 일, 적당히 뭐든 잘 할 수 있지만 오래오래 재미있게 계속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아니지 사실 지금 친구들과 준비하고 있는 창업프로젝트가 그 일이긴 하지. 나는 지역이 달라서 나머지 친구들처럼 시간과 에너지를 내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건, 좋아하는 사람들과 일을 잘 하는 것이다. 제대로 하는 거. 뭐가 되었든 정말 제대로 해보고 싶다. 이거 아닌데 하면서 이상한 마음을 한켠에 품고 찝찝하게 그냥 해치우는 거 말고, 정말 제대로 하는 것. 그건 내가 완벽하게 동의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하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친구들과 하는 이 일을 준비하는 거고. 나의 이 사랑하는 마음을 친구들이 봐야 할 텐데, 아니 알겠지. 나중에 이 일기를 읽어보라고 하면 되니까 좀 더 정리된 문장으로 다시 한 번 써야겠다. 


무엇이 되었든, 어떤 일이 되었든, 왠지 나는 잘할 수 있을 거 같아. 지금까지 내가 했던 일의 영역이 애매해서 전문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또 장점이 될 수도 있는 거니까. 여러 분야를 걸쳐 경험을 해봤고, 새롭게 보고 경험하고 노력하는 걸 좋아하고, 정리를 잘하고, 부지런하고 성실하지. 나의 이 빛나는 장점은, 친구들의 빛나는 창의성, 추진력, 신뢰 위에 꽃피울 수 있을 것이다. 하하. 아무리 일기라지만 너무 아무말을 막 쓰고 있구나. 그래도 괜찮아. 6월에는 그냥 이렇게 쓸래.  


https://www.youtube.com/watch?v=kpI4eXX7Q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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