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 12시, 집에서 혼자 머리칼 자르기

셀프헤어컷, 저는 미용실에 가지 않아요.

by badac

머리칼이 너무 길고 무겁다. 늘 묶고 다닌다고 해도 걸리적거릴만큼 길다. 말아서 한 번 더 묶고 집게핀으로 집어 올림 머리를 만들어도 안 된다. 이제 정말 미용실에 가야 할 때인 것이다.

일 년에 한 번이나 미용실에 갈까. 몇 년 전 파마를 하면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덥석 파마를 했다가 푸석푸석해진 머릿결 때문에 곤혹을 치렀다.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되어서 편하다는 친구의 말은 머리를 감을 때마다 드라이어로 말리지 않아도 된다 정도의 편함을 뜻했나보다. 나는 평소에도 머리를 잘 말리지 않는다. 파마 머리를 했을 땐 오일류의 헤어제품을 바르며 ‘관리’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붕붕 뜬 머리가 사자 갈기 혹은 불난 집에서 자다가 놀라 뛰쳐나온 사람 같아진다. 그래도 재미있는 헤어스타일이었다.

내 헤어스타일의 원칙, 길면 짧게 자르고 짧으면 기른다. 그러면 미용실에 일 년에 한 번만 가도 되었다. 중간중간 손재주가 좋은 친구들이 끝만 조금씩 잘라주기도 했다. 특별히 고수하는 스타일도 없고 미용실에 가는 건 너무 두려웠다. 미용사 님과의 대화도 어렵고, 원하는 게 뭔지 몰라서 정확한 요청도 하기 어렵다. 몇 달에 한 번씩 만 얼마씩 쓰고 싶지도 않다. 미용사님들은 내가 미용실에 오지 않는 머리라는 걸 단박에 알아채셔 늘 ‘미용실에 잘 안 다니시나봐요.’라고 말한다. 그 말이 듣기 싫다고! 어떻게 해드릴까요, 라고 물으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가끔 사진을 들고 가서 이렇게 아주 짧은 머리가 하고 싶어요, 파마가 하고 싶어요. 는 해봤다. 늘 마땅치 않은 표정을 지으셨다. 그래서 늘 새로운 미용실에 간다. 마치 갓 이사온 사람처럼. 새로 다니기 시작하려는 사람처럼.

작년 1월, 머리가 슬슬 자라나고 있을 때 갑자기 뽀글뽀글 파마가 하고 싶었다. 짧은 단발머리에서 그대로 길다가 올 봄에 미용실에 가서 좀 잘랐다. 1년 2개월만이었다. 머리를 감을 때마다 끝부분이 엉켜서 불편했기 때문에 파마 부분을 잘라내고 머리가 묶어질 정도의 기장으로 남겨달라고 했다. 이 단순한 작업을 위해 미용실을 찾아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친구에게 추천받은 시내의 미용실 문앞에 들어섰다가 너무 복잡하고, 사람이 많고, 누굴 찾느냐, 뭘 원하느냐 묻는 스태프에게 겨우겨우 처음 왔고 컷트만 할거라고 했더니 한 시간 넘게 기다리라고 했다. 약간 숨 막히는 상태가 되어 뒤돌아 바로 나왔다. 다른 친구에게 그보다는 한가한 미용실을 추천 받아서 두 번째 도전을 했는데 역시 긴장이 되었다. 그래도 금방 자리에 안내되어 미용사님을 만났는데 정말 눈도 못 마주치고 길이만 줄여주세요. 하고 뒤로 바로 눈을 감고 절대 나에게 말을 시키지 말아달라는 기운을 온몸으로 뿜어댔다. 꼭 미용사 님들은 한 마디씩 한다. 파마 한 지 오래되셨나봐요, 라던가 머릿결이 상했어요, 라던가... 네 저는 미용실에 잘 안 옵니다. 일 년에 한 번 옵니다. 일 년에 한 번 오는 손님은 손님이 아닌가요. 그냥 제가 해달라는 대로 아무말도 안 하고 잘라주시면 안 되나요?

마지막 미용실 방문 이후로 6개월 정도가 지났다. 잘라야 하는데, 잘라야 하는데...전에 잘라주던 친구들은 지금 제주와 대전에 있는데 어떻하지. 어느 미용실로 가야하나. 아무 미용실에나 가도 되나. 동네 미용실도 두렵고 시내 기업형 미용실도 두렵다. 그렇게 하루하루 두려움에 쌓인 채 시간을 보내며 트위터와 다른 사람들의 브런치 글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셀프헤어컷’이라는 글을 봤다. 오호라, 맞아. 직접 자를 수도 있지. 그분도 유튜브를 보고 길이만 짧게 자르는 방식으로 집에서 머리를 손질하신다고 했다. 셀프헤어컷, 집에서 머리자르기 등으로 검색해보니 집에서 자르는 사람들이 좀 있는 것 같았다. 토요일 밤 12시였다. 갑자기 당장 자르고 싶어졌다. 준비물은 머리끈 두 개와 빗, 잘 드는 가위. 고개를 최대한 숙이고 머리를 앞으로 쓸어내려 위로 머리를 묶고 잘라내는 방법이다. 내게는 헝겊을 자를 때 쓰는 엄청 잘 드는 가위가 있다. 그래서 그 시간에 갑자기 벌떡 일어나 머리를 잘랐다. 20센치 가까이 잘라냈다. 끝이 뭉툭하게 미용사가 자르지 않은 게 티가 날 수는 있지만 제법 괜찮은 것 같다. 만족스럽다. 머리를 감을 때 엄청 가벼워졌다. 충분히 묶을 수 있는 길이다.

집에서 혼자 해본 일이 하나 더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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