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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하기, 다양한 시도의 시간들

귀촌 살이 시즌 2

by badac

2017년 4월부터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길에서 커피를 팔았으니 언젠가 카페를 내고 싶어질 수도 있으니까 배우는 마음으로. 카페 일만으로는 수입이 부족해서 청소년 여행멘토 교사로 활동했다. 두 달만에 그만뒀다.


원룸이었던 방을 에어비엔비에 올렸고 손님이 오면 친구집에 가서 잤다. 손님은 두 번 왔다. 기획서, 보고서, 보도자료, 연애편지까지 무엇이든 써드리는 ‘쓸 사람’ 사업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카페 사장님이 처음이자 마지막 고객님이었다. 그래도 재밌었다. 회사 다닐 때보다 수입은 1/3 수준으로 줄었지만 부지런히 다양한 일을 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메꾼다.

카페에서 일하던 시절에 그린 만화

나는 끊임없이 뭐라도 하는 사람이다. 글쓰기와 말하기는 좋아하고 제법 잘한다. 일기를 쓰고 편지를 쓰고 돈을 받고 글을 쓴다. 팟캐스트도 하고 강연도 하고 수다도 떤다. 그것만으로 넉넉하게 먹고 살지는 못하니까 생활인의 영역에선 월급을 벌었다.


회사 생활처럼 영 싫지만 못하지는 않는 일로 주로 먹고 살지만 이왕이면 덜 괴롭고 싶으니 ‘싫어하진 않으면서’ ‘못하지는 않는’ 영역의 일을 찾는다. 좋아하는지, 잘하는지 아직 모르는 수많은 ‘시도’들을 한다. 다행히 시골은 전문가가 많지 않아 취미생활이 조금 능숙해지면 돈벌이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으니 기대를 걸었다.


평소에 배우고 싶었던 타로카드 리딩을 배워 마을 장터에서 가끔 몇 만원씩 벌었다. 도자기 공방, 우쿨레레 수업에는 나가다가 말았다. 실업자국비지원 제도를 이용해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사양성과정 온라인 수업을 들었고 지역의 문화재단 창작지원사업이나 여성재단의 활동지원기금도 신청했는데 떨어졌다. 예술인복지재단의 창작지원금을 받을 수 있어서 한시름 놓았다. 글쓰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마을 신문에 연재기회도 얻었다. 책 <안 부르고 혼자 고침>이 나오고 나니 가끔 강연이나 청탁이 들어왔다. 일 년 내내 고생해서 겨우 한국어교원 자격을 얻었다.

주짓수를 하고, 마라톤을 하고, 고양이 가지와 함께 출간기념회(?)를 하고

역시 불안하고 우울한 날이 또 찾아왔지만 다행히 좋은 친구들이 하소연도 들어주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같이 해보자고도 했다. <귀촌녀의 세계란> 팟캐스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귀촌 사례를 이야기하는 자리에 초대될수록 여자들을 위한 정보를 주고, 멋진 여자들을 소개하고, 여자들이 귀촌 이후의 삶을 상상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없으니까 우리가 만들어야 했다.


2018년에는 기본소득에 준하는 수입도 생겼다. 완주군에서는 10개월 간 귀촌한 청년들 6명에게 활동비 50만원을 지급하며 지역을 탐색할 시간을 벌어 준다. 팟캐스트 제작 환경과 생활은 훨씬 안정되었다. 라디오 고정출연도 했다. 생방송이라 늘 긴장하면서 4달 정도 하다가 재미없어서 그만뒀다. 어디서든 말하기라면 자신 있었는데 듣는 작가님도 재미없다고 하고, 말하는 나도 재미없는 걸 보니 나는 모든 말하기를 잘하는 건 아니었나보다.


뭐라도 하는 날은 계속 되었다. ‘방황전문 진로탐색가’답게 재미를 위한 일, 당장의 수입을 위한 일, 앞으로 직업으로 할만한 일을 계속 찾아봤다. 동네에서 글쓰기강좌나 모임을 운영해볼까 싶어서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해 작업실을 얻었고, 유튜브 교육을 신청했다. 창업도 유튜브도 당시에는 하지 못했지만 2년 뒤인 2020년엔 둘 다 시작했으니 언젠가 글쓰기 선생님도 될 수 있을 것 같다.


타로카드로 운세 읽기, 우쿠렐레 연주하며 노래하기, 라디오에 출연해서 말하기는 아직 돈벌이로 이용하기에는 잘 못하는 일이다. 글쓰기 선생님은 하고 싶지만 잘하는지 못하는지 모른다. 잘하면 돈이 될 것 같기는 한데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아예 모르는 일들도 있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처럼 청소년들에게 젠더감수성에 대해 말하는 교육도 해본 적이 없으니 좋아하는지, 잘하는지 알 기회가 없었다. 왠지 잘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일단 공부해두었다. 성희롱성폭력 예방 강사 자격을 얻어 수업을 몇 번 나갔는데 이건 못할 거 같아서 안 하기로 했다.


내 입에 밥을 넣어줄 리가 없는 게 거의 확실한 일들도 재밌다는 이유만으로 시작하곤 했다. 팟캐스트처럼 큰 욕심을 내지 않으면서 즐겁게 하다보면 소소한 수입이 생기기도 한다. 덕분에 귀촌에 관한 책도 내기로 했다. 주짓수를 배우고, 달리기를 하고, 우쿨렐레를 치고 노래를 만든다. 일단 뭐라도 하기. 하다보면 뭐라도 걸리기 마련이다. 늘 결과가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다.


운동하다 부상을 당해 한여름 두 달을 앓으면서 극심한 우울에 시달렸고 악기는 여전히 코드 서너 개밖에 못 외우고 노래는 일 년에 한 곡 만들까 말까다. 산만하게 여기저기 관심사를 늘어놓고 이것 조금 저것 조금 하다 말기를 반복하면 이도 저도 안 될 것 같아 불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에게 ‘방황’은 불확실과 괴로움을 동반하는 진로탐색의 방법이자 과정임을 어렴풋이나마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무기력, 혹은 저기력과 고기력을 오가는 양극성 기분장애(조울증)과 비슷한 생활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우울한 여름을 겨우 버텨냈지만 카페일은 계속 하기 힘들어졌다. 2018년 9월에 카페를 그만두었다. 수입이 끊기고 나니 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10월에는 팟캐스트도 시즌을 종료했다. 직장인도, 백수도, 도시생활도, 여행생활도, 귀촌생활도 다 해봤는데 지속되지 않고 괴롭기만 했다. 완주에 계속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서 서울로 돌아가 취업할까 자주 고민했다. 입사 지원도 해봤다. 잘 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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