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 후 1년 반, 회사는 그만 두고, 중고차를 사고,
미리 준비 하고 계획에 따른 귀촌을 한 게 아니었지만 경치 좋고 조용한 곳에서 느긋하게 지내는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라 시골에 살면 좋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한 적은 있었다. 여행이 길어질수록 돌아와 도시의 공기를 마시면 머리가 아팠고, 빡빡하게 들어선 건물과 도로 위의 자동차, 모든 것들이 빠르게 지나치는 도시의 속도에 멀미가 났다.
누군가 너는 당연히 귀촌하겠지? 라고 귀촌을 생각하던 사람이 물었던 게 계기가 되어 어, 내가 하고 싶은 게 귀촌이었나 싶기는 했다. 주변을 돌아보니 지역으로 옮겨 살고 있는 지인들이나 책이나 방송에 소개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미칠 듯 퇴사를 하고 싶을 때는 기술을 배워야 어디서든 당당해진다는 부모님의 말씀이 떠올라 폴리텍대학을 검색했는데 종종 귀촌이 추가되었다. 그렇다고 꼭 귀촌이 하고 싶어서 지역을 알아보러 다닌다거나 시골살이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정도는 아니었다.
도시에서 살 때 힘들었던 상황들을 떠올려본다. 8시에 눈을 뜨지만 출근하기 싫어서 버티고 버틴다. 회사까지 40분 걸리니까 머리를 안 감으면 15분 더 누워있어도 된다. 8시 17분에야 부랴부랴 일어나 세수만 하고 아무거나 걸쳐 입고 뛰쳐나간다. 모두 뛰어다니는 지하철역을 지나 회사로 출근해서 온힘을 다해 일한다.
야근과 철야가 이어져도 명예인지 보람인지 자기만족인지 정체도 불분명한 성과를 향해 질주한다. 비영리 시민사회분야에서 주로 일했던 터라 돈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욕심을 부리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그렇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지쳤다. 퇴사를 거듭하다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을 느꼈다. 귀촌이 단 하나의 해결책은 아닐지라도 주변 사람들이 모두 달려나가기 때문에 덩달아 나도 달려야 할 것 같은 기분은 느끼지 않고 싶었다. 최소한 자동차와 사람들의 소음이 없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자연 가까이에서 그들을 느끼며 살고 싶었다. 일상을 떠나 여행을 가듯, 익숙한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살아보기로 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은 아름다운 동시에 적막하다. 여기서는 지하철에서 모르는 사람과 포개져 출근하고 길을 걸을 때도 줄서서 기다리면서 어깨를 부딪히지 않아도 된다. 그 한적함이 때때로 외롭고 쓸쓸하다. 지역으로 삶터를 옮겨올 때 가장 큰 걱정이던 먹고사는 문제는 생각만큼 심각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외로움이었다. 속 얘기를 할 오랜 친구, 이유를 묻지 않고 눈물을 닦아주는 가족,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면서 배가 아플 때까지 웃을 수 있는 동료들이 그리웠다. 여행에는 도가 텄으니 완주에서의 생활을 긴 여행이라고 생각하자고 했지만 아무리 아껴 쓰고 벌면서 다닌다고 해도 여행은 모아둔 돈을 쓰기만 하면 되고 언젠가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전제한다. 그렇지만 삶터를 옮기는 일은 ‘원래의 자리’를 새로 만드는 일이었다. 완주에 직장을 얻고 집을 구하고 살기 시작하면서 ‘원래’ 나의 자리는 사라졌다. 여행을 가도 이제 여기가 돌아올 자리다.
여행 중 느끼는 외로움은 언젠가는 끝나고 오히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지만 일상생활 중에, 내 삶터에서 외롭다고 느껴질 땐 어떻게 해야할까. 모든 선택에는 장단점이 있으니 아름다운 곳에서 사는 대신 심심하고 괴롭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인간은 원래 외로운 존재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일까. 그런 생각들로 점점 더 우울해졌다.
또래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를 찾아다니며 모임에 참여하고 어울렸다. 인근 도시인 전주로 영화를 보러가고, 근사한 식당에, 계곡에도 갔다. 평소 배우고 싶던 걸 배우는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지루한 회사생활에 활력을 만들어볼까 하고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지원해서 영국도 다녀왔다. 그렇지만 허기는 채워지지 않았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우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괴로움, 고립감, 회사 스트레스를 아름답고 평화로운 환경이 상쇄시켜주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2016년 말, 1년 5개월 동안 다닌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게다가 지역살이는 도시생활의 완벽한 대안이 아니므로, 내가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문화생활만 하더라도 도시에서는 선택하고 소비만 하면 끝나지만 여기에서는 직접 기획한다. 더해 악기를 배워 연주회를 열기도 한다. 엉성하지만 직접 무언가를 꾸리고 만들어 교류하는 기쁨은 전에 없이 뿌듯함을 느끼는 고유한 감각이지만 굉장히 지난하고 거칠고 때론 구질구질하다.
음식이든, 관계든, 문화적인 것들이든 매끈하고 세련된 게 그리울 때가 점점 더 많아졌다. 단순하게는 지하철역 근처 로드샵에서 살 수 있던 물건, 어디서나 판다고 생각하는 그런 물건을 사기 위해 차를 타고 10여분을 가야 한다. 밤이 너무 빨리 찾아와 해진 뒤에는 다니기도 어렵다. 자가용이 없으면 그나마도 불가능. 차 없이 지냈던 첫 두 해와 자가용 생긴 뒤로는 생활반경, 이동속도,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느끼는 심리적 장벽 측면에서 비교할 수조차 없다. 그래서 지역에서는 시급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어지간하면 차를 끌고 다닌다. 회사를 그만두면 생활반경이 더 넓어져야 하니까 결국 나도 중고차를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