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을 실행하다
다시 회사원이 되고 싶지는 않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창업? 어떻게 준비해야하는지 전혀 모르고 관심 있는 분야도 아이템도 없다. 프리랜서? 전문 분야라고 할 만한 것도 일로 전환할 만한 취미랄 것도 없다. 이전 직장 생활로 쌓아둔 인맥, 기술도 마땅치 않다.
종사했던 분야는 크게 보면 문화기획이라는 말로 아우를 수 있지만 출판사, 시민단체, 문화의집, 여행사 등을 각각 3년 이내로 다녔기 때문에 전문성이랄 게 없다. 그나마 사회적 기업 지원금, 지자체 지원금 등 정부지원사업 수행 경험이 있으니 민간위탁기관이나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구인공고를 살펴봤다.
가고 싶은 곳이 하나도 없다. 어떤 일을 할지, 어떤 마음이 들지 너무나도 뻔했다. 재미도 보람도 없을 것이다. 자아실현이라든가 사회 정의 구현이라든가 거창한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내 생활을 유지해줄 밥벌이면 충분하지 않냐고 반문해봐도 회사 체질이 아닌 내가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이 또한 내 마음일뿐 고용주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절대 나를 뽑을 것 같지도 않다. 경력직으로 가기엔 전문 분야가 없고 신입이라기엔 나이가 많다.
고르고 골라서 두 개의 입사지원서를 작성했지만 보내기 버튼을 결국 누르지 못했다. 붙여줄 리도 없지만 만에 하나 합격한다 해도 다닐 자신이 없었다. 회사 생활은 너무나 괴로울 게 뻔하다. 어떤 기대도 희망도 생기지 않았다. 회사에 다닐 수 없다면 뭘 해서 나를 먹여 살려야 할지 앞날이 캄캄했다.
그런데 완주의 한 협동조합에서 낸 채용공고를 봤을 땐 신기하게도 자신이 있었다. 일은 하나도 어렵지 않아 보였고 지원만 하면 당연히 뽑힐 것 같았다. 연고 없는 낯선 지역이라 오히려 여행지처럼 느껴졌다. 귀농귀촌인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협동조합이었다. 그런 곳에서라면 나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것저것 해본 다양한 경험은 새로 생기는 작은 조직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력으로 환영받는다. 지역으로의 이주를 한 번도 적극적으로 생각해본 적 없지만 이것은 기회다. 완주에서라면 회사를 다닐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전에 살던 서울 집에서 회사를 다닌다고 상상해봤다. 이전과 똑같은 생활을 할 것이다. 아침에 허겁지겁 일어나 사람들 사이에 끼여 지하철로 출근한다. 자기 개발과 삶의 활력을 위해 출근 전에 수영이나 요가, 영어 학원을 등록할 수도 있지만 오래 못 갈 것이다. 답답한 사무실에서 하기 싫은 일을 꾸역꾸역 해치우고 퇴근을 하면 길에는 나처럼 퇴근하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지하철역을 향해 간다. 도로에는 차들이 빵빵거리고 버스정류장에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몰려 있다. 줄 서서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고 줄 서서 버스에 오른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번 차에 못 탈 때도 있다. 숨 막히는 차를 타고 지친 상태로 겨우 집에 온다. 갑갑한 작은 방에서 창밖으로 복도를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와 옆집 텔레비전 소리와 크고 작은 생활소음을 들으며 저녁 시간을 보낸다. 바로 집으로 오지 않고 친구나 언니와 저녁 식사를 하거나 강연이나 모임 같은 특별한 이벤트 자리에 가기도 한다. 즐겁긴 하겠지만 무척 피곤할 것이 분명하다.
귀촌해 완주에서 회사를 다닌다고 해도 직장인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마음에 안 맞는 동료나 상사가 생길 수 있고, 일의 의미나 재미는 금방 사라질 것이다. 일은 하던 대로 그냥 하면 된다. 크게 어렵지 않을 테고 아침이면 출근하고 저녁이면 퇴근하겠지. 그래도 업무 시간 이외의 생활은 전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어떻게 출퇴근을 할지, 어떤 집에서 살게 될지, 이웃은 누가 될지, 매일 보는 풍경은 어떤 모습일지. 모르기 때문에 미리 실망할 필요는 없다. 지겨움을 견디지 못하는 내게 새로운 것, 알지 못하는 것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꼭 완주일 필요는 없지만 서울과 전혀 다른 곳이라면 어떤 가능성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에 대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어디서 살까 라는 새로운 질문을 발견했다.
그리고 완주에 가게 되면 혼자 살아야 한다. 원가족과 떨어져 산 지는 오래됐지만 내가 중학생일 때부터 언니는 부모 대신 나를 보살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는 독립하고 싶었지만 경제력도 없었고 가족들도 반대했다. 나가 살고 싶은 마음에 여기저기 떠돌아다녔는지도 모르겠다. 서울에서는 방법도 명분도 없어 불가능한 독립이 귀촌하면서 가능해졌다. 직장생활이야 뻔하겠지만 처음 해보는 것들이 많아 기대된다. 지인들의 빈집이나 대전 대동작은집에 살면서 조금씩 살림을 시작했는데 세탁 세제도 그때 처음으로 사봤다. 집도 구하고 살림살이도 사고 밥도 해먹고 생활인으로 잘 살아가야 한다. 더 이상 여행자도, 피부양자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