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귀촌 시절
도시를 떠나 살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지만 어디로 가야 하나, 지역으로 가서 어떻게 먹고 살고, 누구랑 놀고, 무얼 하고 살아야 하나 본격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출근하기는 싫지만 맘껏 돈을 꺼내 쓸 수 있는 화수분도 없다. 스스로를 먹여 살려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여 회사원이 되었고 실패했다. 다른 방식으로 살아볼 수 있을까 시도하던 4년의 시간도 실패일까. 나는 세상이 정한 길과 반대로 걸어가며 운명을 개척하는 사람은 못 될 것 같다. 서울이 아닌 곳에서는 실패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로 다시 회사원이 되었다.
2015년 8월 6일 목요일 짐을 싸서 면접을 보러 내려왔고 그날 바로 근무를 시작했다. 친구네 집에 한 달 정도 신세지면서 완주군 봉동 읍내에 있는 11평 원룸 아파트를 구했다.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는 25만원이었다.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이주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자리에 여러 번 초대되었는데 만나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시골에 가면 도대체 뭘 먹고 사나요?’다. 지역을 결정하는 것도 어렵지만 가기로 결심했다고 해도 당장 할 일, 소속된 회사,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수입 없이 이주를 감행하기는 어렵다. 나 역시 여기서 일을 구하지 않았더라면 내려올 생각도 안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주해서 살아보니 구체적인 계획이나 직장 없이 오더라도 몇 달이면 어떤 종류든 일할 데는 생긴다. 최소한 굶어죽지는 않는다.
먼저 귀농귀촌한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지역에 좋은 이웃이 늘기를 바란다. 아무래도 전에 살던 도시보다 즐길 거리, 놀 거리,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적어서 외롭기 때문이다. 또 본인이 처음 이주해 적응할 때 이웃들에게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새내기들에게도 도움을 줄 준비가 되어 있다. 일거리를 소개시켜주고, 먹을 걸 나눠주고, 각종 유용한 정보들을 알려준다.
그래서 초기 몇 개월을 버틸 수 있는 생활비와 불안해하지 않을 마음만 가지고 일단 내려오면 어떻게든 살아는진다, 고 말하는데 나도 그렇게 못했기 때문에 안정된 직장이 없다고, 뭘 하고 살아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고 이주를 주저하는 이들을 이해한다. 게다가 나는 원래 쉽게 결정하고 바로 실행하는 성격이다. 아니다 싶으면 후회하면서 결정을 번복한다. 완주행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돈을 벌어야했고, 자영업 창업이나 프리랜서가 아니면 월급쟁이를 해야하는데 마땅히 가진 기술도 없으니 다시 직장인이 되는 선택뿐이었다. 회사생활은 지겹겠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디라도 상관없었고 때마침 여기였다.
솔직히 말하면 직장 생활은 도시의 그것과 많이 다르지는 않았다. 사람 사는 곳이 어디나 비슷하듯 사는 모습도 그러하다. 읍내 아파트에 살기에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몰랐고 도시에서와 같이 출퇴근을 반복하면서 고단한 삶을 이어갔다. 도시의 친구들은 전원일기에서 보던 풍경을 떠올리며 마을회관에 모여 할머니들과 고스톱을 치고, 잔치 음식을 나눠먹고, 텃밭쯤은 가꾸면서 상추나 고추를 따먹느냐고 묻는다. 아파트에서도 공동체를 만들려는 노력을 하느라고 텃밭 분양도 하고, 영화상영도 하지만 남의 일이다. 게다가 농사는 천성이 부지런한 사람이나 하는 거다. 시골로 왔으니 텃밭 농사쯤은 해보고 싶어서 2만원에 10평을 분양해주는 텃밭을 신청했는데 1년 동안 딱 3번 갔다. 그래도 베란다에서 가만히 앉아 바라보는 풍경은 도시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비행기를 타고 동남아 어디쯤이나 가야 볼 수 있는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풍경, 최소한 제주도라도 가야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장면을 매일 아침 보고 살았다. 발리에서 보낸 행복한 시간들에 비교해도 손색없는 평화로운 시간. 해가 지고나면 사위가 어둑해진다.
퇴근하고 나면 갈 곳도, 가야할 곳도 없고 집에서 딱히 할 일도 없었다. 마냥 좋았다. 자연스럽게 자연의 리듬에 따라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하루를 마감했다. 9시쯤 잠들면 6시도 되기 전에 눈이 떠진다. 커피를 내려 베란다에서 마시고 책을 읽고 편지를 쓰고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만경강 뚝방길을 따라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출근한다. 황홀했다. 직장생활이 도시의 그것과 거의 같음에도 절대 도시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까닭은 거기에 있다.
눈 닿는 자리 어디에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 시골길을 걸었다. 만경강에서 헤엄치는 오리들, 가을이면 피어나던 코스모스, 논 사이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고 잠들기 직전까지 누워서 달구경을 하던 밤들.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간이 6개월 정도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