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직면해야 하는 걸
경북 김천에서 메일이 한 통 왔다. 고양이 여러 마리를 키우며 혼자 사는 프리랜서 여성인데 집에서 청소 등 살림을 도와주며 같이 지낼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겁도 없이 가겠다고 했다. 무슨 일이든 해서 돈을 벌어야 했다. 의외로 재미있고 잘 하는 일을 찾게 될 수도 있으니 어지간한 일들은 많이 경험해보고 싶었다. 고용주는 업무 지시를 내리는 방식이나 생활 태도가 일반인의 그것과 많이 달랐다. 쌔한 느낌이 들어서 며칠 뒤 그만하겠다고 하고 돌아왔다.
서울 집으로 돌아왔다. 작은언니와 함께 살던 집에 아직 내 방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3년간의 실험은 끝난 걸까. 남은 건 뭘까.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다행히 미리 사둔 발리행 비행기표가 있었다. 일단 발리에 갈 때까지는 할 일이 있으니 그때까지만 버텨보자. 그리고 다녀와서 생각하자.
명동에 있는 비즈니스 호텔 청소 일을 구했다. 어떤 일이든지 내가 할 수만 있다면,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만 있다면 괜찮았다.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무언가 하고 있다는 사실이 불안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땀 흘려 청소하고 남산도서관까지 걸어가 막막한 내 심정을 달래줄 책들을 찾아 읽었다. 답답한 마음은 전혀 가시지 않았다. 청소일도 오래 하지 못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내가 무서워 같이 일을 못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사장이 그만 두라고 했다. 신경써주는 척 하면서 나한테 일을 떠넘기길래 그러지 말라고 했더니 벌어진 일이다. 부당함에 싸울 생각도 안 하고 알겠다고 했다. 사는 게 다 시들하던 시기였다. 불안과 무기력과 우울감은 깊어만 갔다.
표를 버리느니 그냥 다녀오자던 발리 여행은 꿈만 같았다.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 있어서였을까 어디서나 환대받는 느낌 덕분이었을까.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들과 친해져 노래방에 가고, 우쿨렐레를 사기위해 상점가를 헤매고, 숙소와 교통편을 조사해서 지역을 옮기는 여행의 모든 일들이 신났다. 통장 잔액이 얼마인지 돌아가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고민할 새가 없었다. 한적한 지역으로 옮기고 나서는 매일 동네를 산책하고 바다에서 수영 하고, 노래를 부르고, 현지의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웃었다. 마을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일기를 썼다. 한국에서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살았던 것처럼 발리에서도 그렇게 살고 싶어졌다. 두 달의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커피 노점을 차릴 준비를 해서 2015년 5월에 다시 발리로 갔다.
다시 찾은 익숙한 동네지만 숙소를 찾기 어려웠다. 놀러온 게 아니라 주민이 될 계획이니 저렴한 곳에서 현지인처럼 지내고 싶었다. 그런 생각이 얼마나 부질없었는지 현지 친구가 결혼 전에 살던 방을 소개 받고서 알게 되었다. 볕이 들지 않아 캄캄하고 좁은 방에 덩그러니 나무 침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외양간 같은 집을 보자마자 여기서 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떻게든 살아지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준비도 없이 온 내가 한심하게 여겨졌다. 결국 여행자들을 위해 온수 샤워와 주방 시설이 완비된 숙소에 짐을 풀었다. 옆방에는 다이빙센터에서 강사 일을 하는 백인 남성이 살고 있었다. 말을 섞어본 적은 없다.
사는 것을 체험하는 장기 여행자일 때와 달리 어느 정도 진짜 살기를 결심하고 오니 뭘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동네 산책, 새벽시장 방문, 바다 수영, 뒷산 등산 등 전에 즐겁게 했던 일에도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아침에 되면 겨우겨우 근처 가게에 가서 야채를 사다가 볶음밥을 만들어 먹고 하루 종일 뭘 해야할지 고민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경치 좋은 곳에 노점을 차리고 여행객에게 커피를 팔아볼 엄두도 못 냈다. 염두에 두었던 곳에서는 현지인이건 외국인이건 저녁마다 맥주를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가끔 나가서 상황을 살폈지만 흥청망청 취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무서워서 가까이 가보지도 못했다. 가끔 직접 만든 팔찌나 기념품을 조금씩 들고 다니면서 파는 아기 업은 현지인 여성이 있었다.
겨우겨우 기운을 내서 자전거를 샀지만 단 한 번도 커피노점을 열어보지 못했다. 바다 쓰레기를 줍고 환경 보호 활동을 하는 단체에도 찾아갔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자신감은 사라지고 두려움만 남았다. 그렇게 두 달이 훌쩍 지나갔고 조용히 한국으로 돌아왔다. 비자 연장을 위해 미리 사두었던 싱가포르 왕복 항공권은 그냥 버렸다.
발리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겠다고 주변인들 모두에게 큰소리치고 떠난 터라 도저히 부끄러워서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첫 책 <나혼자 발리>의 마지막 부분은 회사를 그만두고 여기저기 방황하며 살다가 이제 발리러 살러 가요, 로 끝났다. 일정이 미뤄져서 이제서야 그 책이 나오게 되는데 나는 거짓말쟁이가 된 기분이다.
남들 눈이야 신경 안 쓴다쳐도 나부터도 정말 이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회사원으로 살고 싶지 않다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산 지 거의 4년이 지났지만 이제 더 이상 그렇게 살 수는 없다. 이런 삶도 저런 삶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지만 우선은 돈을 벌어야 했다.
(2015년 <나혼자 발리>가 출간되고 책 내용과 나의 현실 사이의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 <완주행보>를 쓰면서 브런치를 시작했다. 2020년 11월,전자책으로만 출간되었던 <나혼자 발리>를 인디자인 워크숍을 들으면서 이후의 이야기를 짧게 덧붙여 소장본으로 딱 1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