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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리를 애타게 찾아다니던 시간

귀촌 이전의 방황

by badac

인도네시아 발리 섬에서 커피 장사를 하고 싶었다. 2015년 1월 생일날, 두 달 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설레는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내가 머물던 작은 마을에는 관광객이 끊이지 않았고, 유럽과 중국에서 온 외국인 사업가들이 다이빙샵이나 숙박업소, 식당, 카페를 차려 성업 중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동네에는 다양한 가게들이 들어섰다. 마을의 현지인들과 엄청나게 친해졌으니 바닷가에 있는 친구의 집에서 당장 가게를 시작하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착각에 기반한 순진한 상상이지만 그때는 운명처럼 느껴졌다. 설비가 많이 필요한 사업은 못해도 길거리에서 커피를 팔았던 경험이 있으니 발리에서도 커피 장사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발리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이민을 본격적으로 생각할 깜냥은 되지 못해서 2달짜리 관광비자로 입국한 다음에 상황을 살펴보기로 했다. 인근 국가로의 출국과 입국을 반복하면 최대한 8개월 정도는 머물 수 있는 것 같았다. 한국-발리 왕복 항공권에 더해 비자 만료 시기에 맞춰 발리-싱가포르 왕복 항공권도 미리 사두었다.

퇴사 후 2011년 12월~2012년 1월 뉴질랜드 자전거여행을 다녀왔다.

발리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2011년부터 4년여 동안 제주, 부산, 상주, 천안, 대전 등지를 몇 개월씩 돌아다니며 살았다. 사는 곳을 바꾸면 인생이 달라진다고 했던가. 중고등학생 시절 본가를 떠나 광주에서 지낼 때,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왔을 때 크게 두렵고 불안했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은 나보다 훨씬 아는 것도 많고 경험도 풍부했다. 열등감에 시달리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일은 어려웠고 내내 외로웠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서울에서 산 시간이 고향에서 산 시간보다 더 길어졌음에도 여전히 내가 서울사람이라고 느껴지진 않았다. 그렇다고 고향이나 유년시절을 보낸 광주가 특별한 장소로 기억되지도 않는다.


사는 곳이 자주 바뀐 덕분이었을까 이방인 특유의 생존능력 덕분이었을까 나는 변화에 잘 적응하고 새로운 시도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새로운 삶터에서 내 자리를 만드는 과정은 고단하지만 삶의 주도권을 스스로 쥐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그러다보니 생활을 단단하게 지탱해줄 안정감이나 든든한 관계를 갈망하면서도 자극이 없고 무던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지겨워하는 부작용이 생기고 말았다.


언제나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의심이 사라지지 않았다. 학창시절에는 졸업만 하면 그래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 수 있겠지 기대하며 취업이라는 목표를 향해 살아간다.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정확히 알기도 어려운 데다 원하는 직장에 골라서 들어갈 수도 없기 때문에 선택인 듯 타협인 듯 삶을 꾸리게 된다. 그러다 이게 아닌가 싶으면 퇴사와 입사를 반복한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일을 찾을 거야’ 인 줄 알았는데 ‘지금 이 상황이 싫어’인 경우가 많았다. 뭐가 되었든 퇴사의 이유로는 충분했다. 내 일을 찾아야만 했다. 분야를 막론하고 조금이라도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에 도전했다. 그리고 매번 퇴사했다. 회사를 다닐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일지도 모르니 재취업을 준비하는 대신 일단 가진 돈이 떨어질 때까지 되는 대로 살아보기로 했다. 다르게 살다보면 뭔가 떠오를 수도 있으니까.


2011년 7월 퇴사 이후 뉴질랜드 자전거 여행, 제주도 집짓는 현장을 거쳐 퇴사한 회사에 재입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또 퇴사. 이젠 진짜 진짜 막다른 길 앞에 선 것 같은 순간, 기꺼이 숙식을 해결해준다는 친구가 있는 부산으로 갔다. 2012년 7월이었다.

고민과 방황의 경험들을 나누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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