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엔 부쩍 힘이 든다. 생명이 움트고 시작하는 기운이 만물을 들뜨게 할진데 도통 나는 기력이 없다. 매일 출근을 하는 직장인도 아닌데 자도자도 졸리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고, 몸이 무겁고 늘 피곤하다. 어찌나 스스로에게 가혹한지 게으름 피워도 좋고 늦잠을 자도 된다고 허용해주지 않는다. 너 왜 11시가 넘도록 못 일어나? 한 일도 할 일도 딱히 없는 주제에 왜 이렇게 살아? 하루 중 유일하게 의미 있고 행복한 순간은 미가옥에 가서 콩나물국밥을 먹을 때뿐이었다.
뭐라도 해야지 싶은 마음에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온라인 영어 수업을 신청했다. 친구가 시간과 마음을 내어 그림 수업도 열어주었다. 돈을 내든 내지 않든 꾸역꾸역 억지로 겨우겨우 숙제나 하고 정말이지 흥이 나지 않는다.
“막막하면 미가옥 콩나물국밥을 먼저 그려봐. 좋아하는 마음에서 힘을 빌리자.”
내 사랑 미가옥 콩나물국밥을 그린다고? 어머, 생각만 해도 신나. 너무 잘 그리고 싶은 마음에 지레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사랑은 나를 움직이게 한다. 콩나물 가닥 하나, 김 한 장, 깍두기 한 조각, 국물 한 숫갈 등 콩나물국밥을 생각하면 색감, 온도, 식감, 맛, 음식에 대한 내 느낌까지 구체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걸 잘 그려내고 표현하는 건 다음 단계의 작업이겠지만 일단 콩나물국밥을 떠올리면 흐뭇한 미소가 동시에 따라온다. 헤헤, 생각만 해도 마냥 좋은 사랑. 먹어도 먹어도 좋은 음식, 마음껏 좋아해도 되는 무엇이 있다는 게 어디냐. 얼마나 좋고 고마운 일이냐. 먹을 때마다 너무 좋아서 사진도 무척이나 많이 찍어뒀다. 친구가 콩나물국밥 사진들 중에서 초보자가 따라 그리기 쉬울 법한 걸 골라줬고 끙끙대며 호호 불며 한 숫갈씩 그렸다. 선생님의 칭찬과 노하우 전수까지 더해져 작품이 완성되었다. 그렇게 한 걸음, 좋아하는 콩나물국밥의 힘에 기대 무기력을 헤쳐나갔다.
다음 도전은 영어 공부. 시간 여유가 있어서 평소에 관심 있던 온라인 영어 수업을 신청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너무 하기 싫어서 겨우겨우 출석만했다. 직장 다니느라 바쁜 것도 아닌데 숙제도 안 해가면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거 같아서 숙제는 꼭 해갔다. 그러던 어느날, 구체적인 행동이나 패턴을 묘사하라는 작문 숙제를 받았고 그즈음 가장 관심있는 주제, 누구에게든 술술 말할 수 있는 이야기인 콩나물국밥 조리과정을 영작했다. 미가옥에 관해서라면 영어든 한국어든 말할 수 있었다. 뜨거운 국물을 밥에 부었다 따랐다 하면서 국밥을 데우는 토렴을 비롯해 미가옥 콩나물국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열심히 설명했다.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영어 단어의 범위 안에서 말을 고르고, 사전을 찾아보며 문장을 만들었다. 역시 사랑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어느 날엔가는 다른 지점의 미가옥에 가보겠다고 벌떡 일어나 집을 나섰다. 여전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꼼짝도 못할 것처럼 기운이 없던 봄날이었다. 도서관에 가야지, 맨날 가는 동네도서관 조금 지겨우니까 조금 먼 곳으로 가야지. 가기만 하면 기분이 좋아질거야, 얼마전 새단장 공사를 마치고 그렇게 좋아졌대. 그렇지만 정말 귀찮군. 가고 싶은데 가기 싫어서 잠자리에서 뒤척거리고 있다가 갑자기 떠오른 생각, 혹시 그 근처에 미가옥 있나? 가는 길에 미가옥이 있었다. 그렇다면 거기 들러야겠다. 어서 서둘러야겠군. 미가옥 삼례에서 시작된 콩나물국밥 사랑은 미가옥 다른 지점, 전주 콩나물국밥 전반에 대한 사랑으로 확장되어 가던 때였다. 역시 미가옥만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그러다 미가옥에 관한 글을 쓰기로 결심하게 됐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시간과 마음과 에너지와 사랑을 가장 많이 쏟고 있는 대상은 바로 미가옥 콩나물국밥이다. 우리 동네에 콩나물국밥집을 차린다는 꿈은 말하면서도 헛웃음이 나오지만, 미가옥 책을 쓰겠다는 목표는 꽤나 현실적이다.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자, 먹을 수 있을 때 실컷 먹고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맛있는지 말하고 싶은만큼 쓰자. 미가옥을 사랑하게 되면서 콩나물국밥을 대하는 태도도 전과 달라졌다. 단순한 콩나물국밥이 아니다. 내 사랑 삼례점의 미가옥 콩나물국밥과 비교했을 때 어떻게 맛이 다른지 꼼꼼히 살피고, 단순히 맛이 있다 없다로 판단하지 않는다. 이 집의 콩나물국밥은 어떤 맛과 특징을 강조하고 있구나 알아차리고 그 나름의 맛과 매력을 즐기려고 노력한다. 한 그릇의 국밥을 만들어 상 위에 올려주는 분들의 노고를 떠올린다. 역시 사랑이 사람을 철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