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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dac Dec 19. 2023

미술관이 된 관공서 건물

대전창작센터


스마일칼국수에서 김밥을 시키면 통통한 김밥 두 줄이 나온다. 아삭하고 매콤한 겉절이 배추김치랑 야무지게 다 먹고 나면 몹시 배가 부르다. 한 줄 먹고 한 줄은 남겨서 들고 간 통에 김치랑 같이 담아오곤 했는데 몇 번 귀찮게 빈 통을 들고 왔다갔다만 한 뒤론 통을 들고 가지 않는다. 배가 살짝 불러도 다 먹는다. 그날도 식사를 마치니 배가 몹시 불렀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 눕고 싶었지만 역류성식도염으로 고생한 인간으로서 먹고 바로 누우면 또 속이 아플 테니까 조금 걷다가 들어갈까? 주간 뉴스레터를 시작했으니 다음 쓸 거리를 찾아서 동네를 어슬렁거려볼까? 지난주엔 내가 사랑한 맛집 스마일칼국수의 김밥에 대해 썼으니 이번 주엔 대전일보 문화부 기자의 마음으로 공연이나 전시 방문기를 써볼까 싶었다.


스마일칼국수에서 5분쯤 걸어가면 으느정이 네거리가 나오는데 걸어온 길의 대각선 방향, 대흥동 성당의 건너편에 대전창작센터가 있다. 요즘은 옆옆 건물인 성심당 주차장에 들어가려고 기다리는 차량이 사거리를 삥 둘러 서 있고, 직원분이 거기까지 나와서 다른 주차장으로 가라는 안내를 한다. 차 안에서건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면서건 쉽게 미술관의 존재를 알아챌 텐데 그만큼 사람들이 들어가는지는 모르겠다. 나만 해도 성심당 가는 길에 매번 지나면서 시내 한복판에 미술관이 있으니 참 좋구나 생각만 하고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었다. 저번에도 전시된 작품보다 건물 자체에 더 관심이 갔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입구에는 문화재청이 지정한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이라는 명패가 붙어 있다. 대전광역시 지역추진위원회가 선정한 좋은 건축물 40선에도 선정되었다고 한다. 1958년에 농산물 품질을 관리하기 위한 농산물검사소로 세워졌고 1999년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2006년부터 대전시립미술관이 관리했고, 리모델링 후 2008년에 대전창작센터로 개관했다. 청년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품과 장소성에 기반한 설치 작품을 주로 소개하고 있다고 홈페이지에 나와 있다. 중요하진 않지만 재미있는 사실 하나 더, 위치 안내 공지글에도 성심당 본관 옆이라고 써 있다. 대전에서 성심당의 지위를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랄까.


며칠 전 그림 수업 시간에는 대전창작센터의 외관을 그렸다. 다음 글감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후보 중 하나였던 창작센터를 그리고 나니 자연스럽게 글을 써야만 했는데, 건물의 역사와 건축양식에 대한 내용을 찾아 읽다 보니 건물이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릴 때도 상자를 겹쳐 쌓아올린듯한 여러 개의 창이 특이하고 귀여웠다. 수직으로 늘어뜨린 창틀도 독특했는데 서향으로 지어진 건물이라 강한 햇빛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관공서 특유의 칙칙한 기운이 감돈다. 권위적인 옛 건물의 분위기와 뭔 소리인지 모르겠는 ‘현대 미술’ 작품의 대응이 흥미롭다. 1층에 두 개의 전시장, 2층에 3개의 전시장이 있다. 갔더니 DMA 캠프 2023 시리즈의 세 번째 전시 ‘구름이 되었다가 진주가 되었다가’가 열리고 있었다. 몇 달 전 기억을 떠올려보니 그때도 DMA 캠프 2023의 첫 번째 전시 기간이었는데 DMA 캠프 프로그램이 ‘젊은 미술’ 전시 기획 공모여서 그런지 문외한인 나에게도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집에 돌아와 작가들의 인스타그램을 찾아 팔로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엔 그때만큼 작품이 인상적이진 않았지만 건물의 분위기는 여전히 재미있었다. 엘리베이터도 앉아서 쉴 만한 곳도 없어서 전시장에서 시간을 오래 보내기는 힘들다. 건물 앞에 멋진 소나무와 좁은 잔디밭 정원이 있지만 바로 앞이 찻길이라 날씨 좋은 계절에 야외에 앉아있기도 힘들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면 기념품가게를 구경하는 게 제일 재미있는 법인데 작은 미술관이다보니 그런 것도 없다. 시내에 있으니 쉽게 오다가다 들를 수 있다는 게 장점일 것이다. 게다가 무료. 그런 의미에서 내년에는 더 가벼운 마음으로 자주 들러야겠다. 익숙해지면 보이는 것, 느끼는 것도 많아지겠거니 기대하는 마음으로.


외국 여행을 가면 미술관에 들른다. 작품을 보러간다기보단 있어 보이는 곳에 가는 기분을 느끼러 간다. 소설에 나오는 인물처럼 시간이 날 때마다 좋아하는 작품 앞에 한참 서 있는 사람이면 멋있을 것 같은데, 그럴 만한 여유도 안목도 없어서 여행 때나 기분을 냈다. 대전에 와서 미술 하는 친구들을 몇 알게 되니 전시를 보러 갈 기회가 많아졌고 전보다는 편한 마음으로 작품을 본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행복해지고 기분 좋아지는 것처럼 작품을 마주할 때 특별한 감동이나 엄청난 깨달음 같은 걸 느낀 순간은 많지 않다. 뭔가 간질간질한 마음이 들다가도 그게 무엇 때문인지 정확히 알아채거나 설명할 수 없었다. 조금 더 그 작품 앞에 더 있고 싶다거나 왜 이렇게 했을까 기분 좋은 호기심이 들기도 하니 이런 게 괜찮은 시작이겠거니 한다. 그냥 좋은 거 보다 자세하게 왜 좋은지, 그래서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알아내 세계를 넓히고 싶다. 하다보면 되겠지. 천천히 조금씩 부담 없는 선에서. 욕심을 좀 내보자면 전시 안내 팜플렛이나 비평문의 어려운 말 대신 내가 평소에 친구들과 쓰는 말과 글로 모호한 아름다움을 얘기해보고 싶다. 차근차근 내 식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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