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심사에서 철탑삼거리까지의 식장산 임도
작년에 이어 올해도 예술로 사업에 참여한다. 공식 명칭은 <2024 예술인 파견 지원-예술로 ‘예술인 동반자사업’이다. 예술인과 사회(기업/기관 등)와의 협업을 기반으로 예술인에게 다양한 활동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예술인의 직업 역량 및 예술영역 확대에 기여’하고자 하는 사업이다. 기업이나 기관에서 예술인과 함께 하면 좋겠다 싶은 프로젝트가 있을 때, 또는 정확히 어떤 프로젝트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예술적인 뭔가를 해보고 싶을 때 예술인복지재단(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중앙 사업과 지역 사업으로 구분되는데, 대전에서는 대전기업과 대전예술인을 대상으로 대전문화재단이 운영한다.)에 신청한다.
예술인 입장에서는 일자리 사업이고, 예술과 사회가 만나는 지점에서 혼자 할 수 없는 새로운 작업에 도전하는 기회가 된다. 10년이 된 사업이지만 문화예술 지원이 사라지는 요즘 업계 상황에 비춰볼 때 조만간 없어질 것 같다는 말이 자꾸 나온다. 예술인들이 팀을 이뤄서 협업해야 하고 기업과 소통하면서 결과물을 내야 하기 때문에 쉬운 프로젝트는 아니다. 운 좋게 좋은 동료를 만나 작년처럼 올해도 즐겁게 작업하고 있다.
4월에 팀이 구성되어 5월부터 10월까지 6개월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보통 5월에는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기존의 자기 작업을 소개하고, 앞으로 어떻게 작업할지 조율하는 등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팀워크를 다지는 데 시간을 쓴다. 그러던 중에 다 같이 등산이나 한번 같이 가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도시락 싸 들고 식장산으로 가벼운 산책을 다녀왔다. 팀의 리더인 얼룩말이 좋은 코스를 소개해주겠다고 해서 그저 따라나섰고 좋은 날에 힘들지 않게 평평한 산길을 한두 시간쯤 걷고 돌아왔다.
요 며칠 <소탐대전> 단행본 작업으로 바빠서 소재 발굴 및 취재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더니 무시래기 그림회 시간에 뭘 그려야 할지 막막할 뻔했다. 급하게 식장산 나들이 갔던 날의 사진을 동료 예술인 토끼에게 보내달라고 부탁해서 후딱 그렸다. 엄청난 오르막길에 주차하고 옆으로 난 임도를 따라 아무 생각없이 걷다가 돌아와서 개심사 일주문빼곤 사진 한 장 남은 게 없었기 때문이다. 더 위로 보이는 개심사가 신비해보여 멀리서 한 장 찍었다. 올라갈 엄두는 내지 못했다. 그렇게 다음 화의 소재가 정해졌다. 경험주의자 입장에서는 한 번 정도는 더 가봐야 그 길과 개심사에 대해 소개하는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 급하게 어제 오후에 친구 다람쥐와 함께 다녀왔다.
네비게이션이 알려준 대로 가는데 아무래도 길이 아닌 곳으로 들어선 것 같아 뒤돌아 나왔다가 길 가는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그 길이 맞단다. 흙길이던데요. 그리로 가면 돼요. 조금만 가면 포장도로 나와요. 흙길로 들어섰고, 어, 어, 어, 정말 이 길 맞아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산길을 달렸다. 얼룩말이랑 올 때도 이런 길이었나? 이상하다. 남이 운전하는 차를 탈 때는 어떤 길로 가는지 신경 안 쓰고 그냥 실려만 오니까 기억이 안 나는 걸까. 그래도 이렇게 험난한 길을 기억못할 리가 없는데… 10분 가까이 엉금엉금 기어를 1단에 놓고 10의 속도로 온 것 같은데,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500미터 정도였다고 한다. 정말, 그것밖에 안 되었단 말이야? 차가 빠져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될까봐 등에 식은땀을 흘리면서 겨우 통과했다.
그리고 만난 포장도로는 경사 70도 정도의 오르막길. 하아~ 쉽지 않네. 겁이 나서 지난번에 차를 세웠던 곳까지도 올라가지 않고 중간에 내려서 걸어갔다. 200~300미터 정도 걸어갔으려나. 급경사 오르막길을 고작 몇 분 걷는데 숨이 차서 헉헉거렸다. 아이고, 힘들다. 그래도 공기 좋고 시원하고 좋…다. 지난번에 못 올라가본 개심사에 올라갔다. 저 멀리 대전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좋긴 좋은데, 너무 힘들고 앉아 쉴만한 곳이 없어서 대웅전에 들어가 부처님 앞에서 잠깐 쉬다가 나왔다. 맨 뒷자리에 긴의자가 있어서 바닥에 앉지 않아도 되서 좋았다. 사실 종무소 앞 나무 그늘에 평상이 있었는데 보살님 두 분이 대화를 나누고 계셔서 가까이 가지 않았다. 합석해도 될 것 같았는데, 그냥 하지 않았다.
비탈길을 조심조심 내려와서 지난 번에 걸었던 길에도 갔다. 2.5킬로미터 정도를 걷고 다시 돌아오는 길인데, 초입만 살짝 걸었다. 오늘도 역시 아름답구나. 아늑한 느낌이 드는 길이다. 나중에 찾아보니 개심사에서 철도삼거리까지 이어진 임도라고 한다. 임도는 통나무 운반이나 산림 관리를 위해 만든 임삼 도로를 줄인 말이란다. 산에 있는 길이라는 뜻이다. 차가 다닐 정도로만 정리되어 있다. 평지라서 걷기도 좋았다. 식장산 등산이라 말하기엔 산의 아주 일부만 옆으로 살짝 걸어봤으니 다음엔 식장산 해돋이 전망대, 세천저수지가 있는 세천공원 쪽으로도 가보고 싶다.
숲속을 걸으니 새소리 물소리가 들려서 참 좋았다. 이때다 싶어서, 내일을 위한 팟캐스트도 후딱 녹음했다. 중간에 소나기가 쏟아져서 긴급 중단했고 그 긴박한 상황까지 다 담겼다. 재밌었다. 단행본 출간 준비를 하면서도 주간 연재와 팟캐스트를 멈추지 않아서 많이 바쁜데 그럭저럭 해내는 중이다. 할만하니까 한다. 여름이 되면 기운이 나니까 괜찮다. 지난 겨울 우울하고 기력없고 맨날 잠만 잔다고 했는데 요즘은 대여섯시만 되면 눈이 떠진다. 하루를 일찍 시작하고 해지면 잠드는 자연스러운 시간을 산다. 이런 날이 그리웠거든. 그렇지만 잘 기억해둬야지. 겨울에 몸이 무겁고 힘든 건 당연한 거고 계절이 바뀌면 다시 일찍 일어나게 된다는 사실을. 겨울의 느릿한 시간도 자연스럽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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