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탑
소탐대전을 책으로 만들려고 할 때, 편집과 디자인, 마케팅까지 모든 게 다 어려웠지만 가장 울고 싶고 도망가고 싶던 순간은 표지를 디자인할 때다. 본문에 있는 그림 중에 마음에 드는 그림을 골라 배치하거나, 추가 원고에 넣은 귀여운 자화상을 옹기종기 넣으려고 했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결국 오리 선생님의 지지와 응원, 지도와 편달을 따라 새롭게 그림을 몇 개 그렸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대전의 상징을 그려야하지 않을까 생각하곤 이것저것 찾아봤다. 한빛탑, 꿈돌이, 대전역, 성심당, 야구장, 칼국수 같은 게 떠올랐는데 오리 선생님은 남들 다 그리는 흔한 것 말고, 나만의 대전으로 표현하고 싶은 걸 생각하라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대전에만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대전에서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리면서 대전을 탐험하는 자전거 탄 나, 걸어다니는 나, 대전 집에 같이 사는 우리 고양이 가지, 맛있는 빵, 교통의 중심지로 만들어주는 기차 따위를 실컷 그렸다. 그래도… 그래도… 언젠가 남들 혹은 대전시가 나서서 대전의 상징이라고 주장하는 한빛탑과 한빛광장, 엑스포 다리를 소탐대전에 소개하면서 그려보고 싶었다. 그래서 갔다.
한밭수목원과 엑스포시민광장을 엮어서 산책과 자전거를 즐기는 소풍을 떠올리며 저녁 나들이를 갔는데 너무 늦게 도착해서 산책을 못했다. 하절기 입장마감이 8시였다. 아쉽지만 자전거 타고 놀면 되니까 광장을 가로질러 갑천쪽으로 갔다. 사람이 많아서 타슈 경쟁이 치열했다. 눈치게임처럼 타슈가 보관소에 다가오면 혹시 반납인가 다른 대기자는 없나 주위를 살폈다. 결국 걸어서 엑스포 다리를 건넜는데 그래도 한빛탑 앞쪽으로 오니 타슈가 몇 대 보였다. 부푼 마음 안고 달려갔는데 이용불가. 그래서 남아있는 거였네. 나는 포기하고 광장을 어슬렁 거리는데 매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왠지 곧 내릴 것 같은 타슈 인간이 보관소로 다가가면 눈을 떼지 않고 좇았다. 그러고는 한 대 확보. 잠시 후에 반납하는 내내 옆에 붙어서 한 대 더 확보.
늘 멀리서만 보던 한빛탑에 자전거를 타고 드디어 도착했다. (밝을 때 보니 물빛광장 안으로는 자전거를 타고 들어오면 안 되는거였다. 몰랐어요. 죄송합니다) 때마침 대전비어위크 축제 기간이었고 광장 여기 저기에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고 푸드트럭에서 파는 음식과 싸온 음식을 펼쳐놓고 저녁을 즐기고 있었다. 5월 2일부터 12일까지는 한빛야행축제, 5월 14일부터 6월 2일까지 대전 비어위크 축제가 열렸다고 한다. 보문산 사정공원에 휴일에 갔을 때 대전에는 사람이 별로 없고 안 복잡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봐. 봄밤 맥주 축제에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두 축제의 이름은 다르지만 이용객 입장에서는 푸드트럭에서 음식 사 먹고, 야외에서 주변 사람들과 같이 기분 좋게 한 잔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한빛야행축제 때는 축하공연도 있었던 모양이다. 시간이 늦어서 한빛탑에도 못 올라가 봤으니까 나중에 낮에 꼭 다시 오겠다고 다짐하면서 일단은 돌아왔다.
며칠 뒤, 예술로 프로젝트 같이 하는 너구리와 한빛탑에 갔다. 한빛탑 주차장을 검색하니 대전무역전시관 주차장이 안내되었다. 바로 옆이고 주차비도 저렴하다. 한 시간 무료, 30분 마다 500원. 전시관 운영 시간은 9시 반부터 5시 반까지로 나와있는데, 내부 카페 영업시간은 9시 반이란다. 입장은 제한하고 들어가 있는 사람은 야경을 즐길 수 있는 건가. 6시 넘어 나오긴 했는데 입장을 제한하는지 확인은 못해봤다.
한빛탑은 93미터이고 지상 36미터 지점에 전망대가 있다. 도너츠처럼 탑을 둘러싼 원형 공간에서 모든 방향으로 대전을 바라볼 수 있다. 평일 오후에 가니 한적하고 좋았다. 무료 입장이라서 마음 편히 구경하고 테이블에 앉아서 작업했다. 카페가 있으니 테이블 석을 구매고객만 앉을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 특별한 안내가 없고 제지하는 사람도 없어서 그냥 앉아 있다가 왔다. 엑스포다리와 한밭수목원이 시원하게 잘 보였다. 다른 방향도 아는 동네면 재미있었을 텐데 탁 트인 시야, 한산한 실내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이 좋아져서 구석구석 찾아보지 않아도 재미있었다. 한두 시간 있으니 좀 답답하고 졸린 것 같아서 나왔다.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릴 때 ‘영롱한 우주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단다. 2층이지만 꽤 높아서 심심할 뻔 했는데 우주를 지나는 기분으로 기다렸다.
알고 기다린 건 아니었는데 7시가 되니 음악에 맞춰 분수가 춤을 췄다. 시간별로 음악 분수, 미디어 아트가 상영된다. 레이저, 한빛탑 미디어 파사드, 바닥에는 고보 조명까지. (고보 조명이 뭐지? 높은데서 보조하는 조명인가? 찾아보니 과도한 빛으로부터 카메라 렌즈를 보호하기 위해 덮는 매트나, 광원의 모양을 조절하기 위해 조명 앞에 배치하는 것이란다. 길 바닥에 많이 광고나 안내 문구를 보여주는 식으로 요즘 흔히 보인다.여기서는 음악분수 바닥에 모양을 내는 조명을 말하는 모양이다.)
분수에서 물이 나오니 확실히 더 시원해졌다. 음악의 강약, 빠르기에 맞춰 물줄기는 춤을 추고 위로 높이 솟아 올랐다. 귀엽다. 꿈돌이도 물줄기도. 퇴근 시간이 지나니 돗자리와 먹을 거리를 챙겨온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미 오래 있었으니 갈 채비를 했다. 밤에는 조명이 들어오니 음악 분수가 더 화려해질 것 같지만 너무 늦지 않게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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