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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dac Jun 18. 2024

기력과 먹을 거리 채워오는 알뜰충전소

대전역 새벽시장

드디어 대전역 새벽시장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됐다. 늦어도 집에서 7시에는 나서야 하는데 괴로운 계절에는 10시에나 겨우 일어나기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다. 굳은 몸이 힘들게 풀어지는 봄을 지나 여름이 다가오니 대여섯 시가 되면 눈이 떠지는 ‘기력 성수기’가 돌아왔다. 일찍 자는 날에는 서너 시에도 일어나 글을 쓰고 밥을 한다. 새벽시장… 가면 좋은데 그 시간에 못 일어난다, 내일은 꼭 가고 싶다… 는 마음을 품고 몇 개월이 지났을까. 4월의 어느 새벽에 벌떡 일어나 세수도 하지 않은 채로 나갔다. 딱 그만큼의 기력이 채워진 날이었다. 역시 새벽시장에 다녀오면 기분이 좋다. 싸고 신선한 채소, 활기찬 사람, 맑고 찬 공기, 한산한 거리가 주는 상쾌한 기운에다가 부지런한 사람이 된 듯한 뿌듯함으로 온몸에 좋은 에너지가 채워진다. 6월에는 매주 가고 있다. 보통은 오이, 당근, 감자, 표고버섯, 상추, 대파, 양파처럼 늘 사는 것만 샀는데, 지난주엔 용기를 내어 나물을 사봤다. 비름, 박하, 쑥갓, 돈나물을 샀다. 아직 해산물에는 도전해보지 못했는데 이렇게 조금씩 능력치를 키워가다보면 나도 새우니 게니 하는 것까지 살 수 있을 것같다. 


집에 와서 나물을 무쳤다. 물을 끓이는 김에 4종 나물을 한꺼번에 데쳤고 다 같은 양념으로 하면 맛이 비슷할 거 같아서 된장, 간장, 고추장으로 조금씩 변화를 줬다. 동네 반찬가게에서 가끔 나물을 사먹는데 그때 먹은 맛을 떠올리면서 양념을 만들었다. 풀의 맛이 각기 다르니 같은 된장 양념으로 무쳐도 될 뻔했다. 쑥갓엔 들깨가 어울릴 거 같아서 들깨가루도 가득 넣었다. 비름나물이 맛있어서 다음주엔 비름만 더 샀다. 그냥 밥반찬으로도 먹고, 밥에 넣어서 비벼 먹고, 조금 질릴 땐 고추장을 추가해서 맛의 변화를 주고, 다 먹어갈 때쯤엔 한번 볶아서 덮밥으로 먹었다. 천원어치씩만 사도 며칠 먹는다. 좋은 계절이니 시장에 자주 가야겠다.


계절따라 나오는 품목이 달라 시장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을 배운다. 요즘은 마늘이 제철인지 다발로 묶어서 한 접씩 파는 상인이 많았다. 마트에서 사는 깐 마늘이나 다진 마늘 말고, 냉동실에 얼려둔 마늘 말고, 껍질채로 두고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까서 요리에 넣는 호사를 부리고 싶어서 마늘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에너지가 가득 차 있을 때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안 사본 걸 사는 일도 흥미진진한 도전이다. 생산지에 따라 어디어디 마늘이라고 가격이 다르고, 크기나 상태에 따라서도 가격이 달랐다. 그냥 적당한 거 조금 사고 싶은데 엄두가 안 나서 처음 방문 때는 후퇴, 다음번에 갔을 때 용기를 내어 드디어 샀다. 조금씩 팔지는 않았고 어차피 한 접을 팔긴 하는데 알이 작아서 그런지 한켠에 따로 놓여있는 마늘이 있었다. 가격은 천원 깎아서 5천원. 양파망에 넣어 매달아두고 싶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망이 없어서 그냥 종이상자에 넣어 현관에 뒀다. 문을 열자마자 마늘 냄새가 풍긴다. 드라큘라가 마늘을 무서워하던가, 한국 귀신은 오히려 마늘 냄새를 더 좋아할 것도 같다.


여름이니 수박도 사야지. 태전마트에서 만오천 원은 할 것 같은 수박이 칠천 원이다. 가방에 넣고 등에 진다. 타슈를 타고 왔으니 집에 갈 땐 자전거 바구니에 넣고 가야지. 시장에 장보러 올 때는 타슈를 탄다. 내 자전거를 타고 와도 되지만 짐바구니가 없어서 장본 것들을 다 등에 져야하니 힘들어서 집근처 대여소에서 타슈를 빌려 탄다. 가끔 타슈가 없을 때가 있어서 작년에는 내 자전거를 타고, 자전거 뒤에 우유상자를 매달아 짐을 싣고 다녔는데 바퀴가 작아서 한계가 있었다. 뒤가 너무 무거우니 자전거 앞이 들려서 타기 힘들었다. 타슈는 자전거만으로도 꽤 무겁고 앞바퀴쪽에 바구니가 있어서 수박 같은 걸 사서 담으면 핸들이 잘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무겁지만 나는 자전거타기 선수라서 괜찮다. 히히. 물론 뒤에 짐 실은 내 자전거도 잘 타는 편이지만 둘 중 고르라면 타슈가 더 낫다는 얘기다. 


집에 돌아오면 장봐온 걸 바닥에 펼쳐놓고 사진을 찍는다. 너무 아름답다. 트위터에 올려서 자랑해야지.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을 사왔다고! 무려 새벽에 나갔다고! 가격은 얼마나 또 싼지… 보고만 있어도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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