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가락국수
더운 여름이라 입맛이 통… 없다는 건 거짓말이고 먹고 싶은 게 있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는 상태다. 점심에 예술로 모임이 있어서 여럿이서 함께 석갈비와 된장찌개와 쌀밥과 들깨칼국수와 녹두전을 먹고 신나서 춤까지 췄는데 집에 오니 기운이 쏙 빠졌다. 달콤한 케이크라도 먹고 기운을 내서 오늘이 가기 전에 글을 써서 보내야 하는데… 성심당 망고 케이크나 올리브 샌드위치를 먹으면 힘이 날까 싶어 길을 나섰다가 뜨거운 볕 아래 걸을 엄두가 나지 않아, 집 앞 과자 가게에서 카라멜콘과땅콩을 하나 샀다. 진하게 커피 한 잔 내려서 먹고 기운 내야지.
소탐대전의 원고는 사전에 구상 및 소재 선정, 취재 및 사진 찍기, 무시래기 그림회에서 그림 그리기를 미리 마쳐야 생산될 수 있다. 소재 고갈일 때는 시급하게 어딘가에 다녀오거나 예전에 다녀와 찍어두었던 사진 중에서 고르는데 그 역시 발행일보다 한 주 먼저 정해져야 한다. 여름에 어울리는 음식이 아니지만 대전가락국수의 잔치국수와 우동, 토스트와 꼬마김밥을 좋아해서 지난겨울부터 자주 갔다. 저녁부터 자정 넘어까지 영업하는 집이라 야근하고 퇴근한 애인과 저녁 또는 야식을 먹으러 가기 좋다. 캄캄한 밤, 주변 상가는 모두 불이 꺼진 골목에 노오란 빛을 내뿜는 가게는 볼 때마다 예뻤다. 국수와 우동도 맛있다. 목척교 근처 포장마차 거리에서 40년간 장사를 하다가 2021년에 현재 위치에 가게를 열었다. 인스타그램 과거 게시물을 보면 개업 초기에는 포장마차와 가게 모두 동시에 영업을 하기도 했던 모양인데 지금은 매장만 운영한다. 창업자인 1대 사장님과 현 사장님 사진이 벽에 붙어 있지만 요즘은 2대 사장님과 파트너분만 계신다. 우동 및 국수는 남자 사장님이 담당하고, 여자 사장님은 토스트와 김밥, 주문과 계산을 맡으시는 듯. 바쁜 시간에는 현 사장님의 딸로 보이는 분이 서빙과 카운터를 담당한다.
다시 입맛 없는 여름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래서 오늘 저녁엔 이 원고를 발송하자마자 대전가락국수에 가서 잔치국수를 먹을 예정이다. 중앙시장에서 사 온 비름나물이 아직 조금 남아있고, 엄마가 엊그제 보내주신 배추김치, 열무김치가 있어서 간단하게 국수를 삶아서 비빔국수 해 먹으면 좋을 거 같은데, 어째 오늘은 기운이 나질 않는다. 겨울처럼 우울이가 찾아온 건 아니고, 명백하게 과로 때문이다. 드디어 <소탐대전> 단행본이 곧 출간된다. 워크숍에 참여해 인디자인으로 책을 만들어본 적은 있지만 본격적으로 판매를 염두에 두고 책을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쉬운 일이 아닐 거라 예상하기는 했는데 이렇게나 어려울 줄이야. 정말 글만 잘 쓰고 싶다. 책을 만드는 일이나 파는 일은 남이 알아서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만 아무도 안 해주면 내가 직접 하는 수밖에. <오늘 또 미가옥>과 동시 출간할 욕심을 내다보니 편집 디자인부터 교정, 인쇄까지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오늘 또 미가옥>은 이미 만들어놓은 책이 있으니 살짝 손만 보면 될 줄 알았는데, 편집 다시 하고 추가 원고 넣고 하니 만만하진 않았다. 그래도 일단 끝났다. 이제 책 소개 글 써서 올리고, 직거래로 팔 수 있는 만큼 팔고, 전국 독립서점에 입고 문의하고, 출간 잔치 준비해야지. 오늘은 화요일, 소탐대전 원고 보내고 한밭도서관에 희망 도서 찾으러도 가야 한다. 바빠서 책을 읽든 못 읽든 꾸준히 매주 희망 도서 신청하고 빌리고 반납하고 또 빌린다. 매주 사람도 열 명씩 여전히 그린다. 7월부터는 타로카드 두 장씩 매일 그릴 계획도 세웠다. 기운이 난다고 너무 많은 일을 벌이고 있나? 근데 하고 싶은 걸 어떡해. 할 수 있을 때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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