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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dac Oct 24. 2024

출판 일정표

편집과 디자인, 제작까지 독립출판으로 책 만드는 과정

작년부터 정기적으로 원고 세 개를 마감한다. 매주 뉴스레터로 보내는 badacmoves, 3주에 한 번씩 돌아오는 스브스프리미엄(SBS디지털뉴스플랫폼) ‘사까마까’, 격주마다 글쓰기 동료들과의 ‘쓸모임’에 들고 갈 글이 그것이다. 뉴스레터 원고는 시즌별로 주제를 달리하는데 2024년에는 대전 동네 여행기 ‘소탐대전’을 쓰는 중이다. 사까마까에는 1인 가구 생활 팁을 쓰고, 쓸모임에서는 바로 이 원고 ‘표의 세계’를 쓴다. 처음엔 뉴스레터로 보낼 글을 쓸모임에 들고 가기도 했는데, 마감과 독자와 동료가 있는 좋은 기회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얼마전부터 품이 많이 드는 원고를 쓰기로 했다. 일정 분량의 원고가 묶이면 책을 만들어 볼 엄두가 날 것 같아서다. 표의 세계는 출판을 염두에 두고 기획부터 신경을 썼다.


뉴스레터 덕에 재작년부터 글을 많이 쓰는데, 출판을 위해 쓴 원고가 아니라 책으로 내기엔 부족함이 많았고, 내고 싶은 욕심도 없었다. ‘이사 이야기’는 불안을 이기기 위해, ‘오늘 또 미가옥’은 내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예전엔 안 이랬는데’는 아프고 늙어가는 몸을 제대로 살펴보기 위해서 썼다. 순수하게 마음이 쓰고자 해서 자연스럽게 쓰인 글이었다. 일기보다 강력한 다짐으로 글을 써서 보내고 힘을 얻어 이사했다. 목적이 달성되고 덩그러니 남은 글을 보고 있으니 책으로 엮고 싶어졌고 운 좋게 출판사와 출간계약을 맺었다. 맛있는 음식을 정성스럽게 내주는 귀한 식당에 편지보다 크고 강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글을 쓰고 또 썼다.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하고 싶어서 계속 썼고, 한 권 분량이 모이니 책으로 엮어 미가옥에 전달했다. ‘이사 이야기’는 책으로 나와서 기쁘고, ‘오늘 또 미가옥’은 사장님께 한 권 전해드렸으니 성공한 덕후로서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예전엔 안 이랬는데’를 책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생기지 않았는데, 대신 새로 시작하는 뉴스레터는 처음부터 출간을 생각하며 원고를 썼다. 지난 시즌은 쓰지 않으면 안 되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몇 년간의 연습과 훈련으로 불러주지 않아도 계속 쓸 수 있는 작가가 되었고, 이제는 누가 책을 내주지 않아도 책을 내고 마는 작가가 될 차례인가 보다. 직업란에도 망설임없이 작가라고 쓴다. 2024년에는 독립출판물을 만들 계획이다. 내 얘기를 하면서도 누군가 관심을 가질만한 소재와 특징을 찾아 ‘소탐대전’을 기획했다. 연재를 하고 있으니 샘플 원고로 대전문화재단 지원사업에 신청했고 고맙게도 제작비를 받는다. 원고 걱정은 없다. 이제 진짜 책을 만들어내기만 하면 된다. 지금까지는 출판사의 편집자와 소통하면서 디자이너와 마케터 등 전문가와 함께 책을 만들고 팔았지만 이제 혼자 직접 해보는 거다.


마감 시일 안에 글을 쓰는 건 자신 있지만, 디자인하고 교정을 보고 인쇄와 제작까지 하려니 덜컥 겁이 났다. 올해 안에만 책이 나오면 되지만 7월에 열리는 독립출판 북페어 전주책쾌에도 나가보고 싶어졌다. 그러려면 일정 관리를 잘해야 할 텐데… 초보 제작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럴 때 필요한 건, 바로 표 그리고 동료. 표를 그리고 동료를 찾자.


쓸 모임을 시작한 이유도 함께할 동료를 만나고 싶어서였다. 계속 쓰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는 마감이 필요하고 자기와의 약속보다는 독자이자 동료와 함께하는 약속이 강력하다. 글을 통해 다른 이의 세계를 구경하는 것도 즐겁다. 우리는 써온 글을 함께 읽고 짧게 감상을 이야기하는 친목 없는 사이, 잘 풀리지 않는 고민을 살짝 나누기도 하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렴풋이 글 길이 보이기도 한다. 책을 만드는 데도 이런 모임이 있으면 좋을 듯해서 이미 쓴 글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 ‘쓴 모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당장 표를 그렸다.



책이 꼭 나와야 하는 일자를 정하고, 할 일을 나열한 뒤 역순으로 배열한다.



원고가 다 있다는 가정하에 두 달 동안의 커리큘럼을 짰다. 쓸모임의 방식대로 서로 마감이 되어주도록, 만나기 전에 혼자 할 일 목록과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함께 할 일의 목록을 적었다. 누군가와 함께한다면 가장 좋겠지만, 모임원을 구하지 못한다고 해도 이렇게 일정표를 만들어두면 혼자서라도 일정을 지킬 수 있다. 열흘 정도 개인 SNS 계정에서 홍보했고, 당연히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혼자만의 쓴 모임을 해야겠군. 모임 날은 변경될 수 있으니 일주일의 과업으로 정리하고, 진행 경과를 객관적으로 기록하면서 작업 중이다.


참여 조건에 바로 책 만들기 작업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글과 그림을 포함하여 완성된 원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조항을 넣었다. 나도 그 조건에 맞추기 위해 뉴스레터 발행예정일보다 원고도 미리 쓰고 그림도 다 그려서 최종 원고를 마련했는데, 추가 원고가 필요해졌다. 대전을 탐방하면서 장소를 소개하는 에세이가 병렬적으로 나열되기만 하면 자칫 지루해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승전결이 있는 사건이 없으니 계속해서 읽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중간에 성격이 다른 원고를 넣기로 했다. 내가 여행하는 바깥의 이야기인 소탐대전에 대응하는 내 마음 속 이야기 ‘속탄사정’을 쓴다. 장소를 선정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게 얼마나 힘든지 하소연도 하고, 구독형 서비스로 독자가 되어준 친구들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전한다.  추가 원고를 쓰다보니 일정에 조금 변화가 생겼다. 혼자만의 쓴 모임이지만 모임원의 동의하에 일정표를 조금 수정했다. 책쾌 신청서를 쓰는 일정도 실제보다 빨라 미리 했다.



소탐대전이 다 만들어진 6월에는 ‘오늘 또 미가옥’도 다시 제작할 생각이다. 글을 써야 힘을 얻는다는 걸 알아차린 작가가, 사랑을 노래하고 대상에게 고백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리는 없었다. 글을 쓰면 세상에 내놓아야 하고, 글이 모이면 책을 만들어 더 많은 독자를 만나게 하고싶은 것이 작가의 진심이었다. 지금 쓰는 ‘표의 세계’도 모이면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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