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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dinary 박사엄마 Dec 23. 2024

1차 항암을 하기 위해 입원했다.

항암 입원 첫 날의 기록

2024.12.22. 일요일.


1차 항암을 하기 위해 입원했다.

이상하다. 내 몸은 지금 너무나 멀쩡하고 건강한데 몸속에 돌아다니고 있을지 모를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서 멀쩡한 세포들까지 죽이는 약을 맞아야 한다니. 아직까지도 실감이 안 나고 그저 이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항암을 시작하면 내 삶이 이전과는 많이 달라질까?

이전처럼 활기차게 일하고 새벽까지 논문 쓰고, 남편이랑 주말마다 어디를 돌아다닐까 고민도 하고,

기관지염 달고 사는 둘째와 밤새도록 씨름도 하고, 내 덕친 큰아이와 뮤지컬 회전문을 돌고.

그런 일상은 더 이상 누리지 못하는 것일까?

두렵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한데, 어디 한 번 제대로 싸워 보고 싶기도 하고, 뭐 그래봤자 죽기밖에 더 하겠어? 하는 용감무쌍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는 지금, 왜, 어디에 와 있는가.


점심에는 남편이랑 10년 만에 브루스리에 가서 최후의 만찬을 즐겼다.

결혼 준비하던 시절에 우연히 들른 양재동 중식당인데 맛있어서 큰아이 낳고도 한 번 갔던 기억이 있다.

그집 샤오롱바오가 문득 생각났는데 선뜻 남편이 먼저 데리고 가줘서 고마웠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병원으로 들어왔다.

수술하고 두 달 만에 다시 이곳 41병동. 다른 병실 다른 침대에 이제는 바지를 입고 앉아 있다.

부인과 수술 환자들은 치마를 입는데 나는 이제 수술 아니니까 바지 입어도 돼서 그건 너무 좋다.

와서 소변을 제출하고 엑스레이를 찍고 오니 팔에 라인을 잡고 피를 뽑은 후 수액을 달아줬다.

내일은 그 끔찍한 케모포트를 단단다. 쇄골 뚫는 거 진짜 싫은데.

매번 올 때마다 케모를 뚫는다고 한다. 감내해야 한다.

그리고 초록색 휴대용 변기와 그걸 옮기는 손잡이 달린 통, 그리고 커다란 봉다리를 주면서 지금부터 소변을 여기다 모으라고 한다. 아침까지 모이는 양을 보고 약 용량을 결정한다고 하니 시키는 대로 해야겠지. 귀찮으니 물은 좀 덜 마셔야겠고 좀 모아서 화장실에 가야겠다는 결심이 든다.

이건 1차, 4차, 7차… 이렇게 3차에 한 번씩 해야 한단다.

나는 6차를 각오하고 있으니 두 번은 해야 하겠지만 부디 세 번 할 일은 없기를 빈다.

1a기인데 내 암은 재발률도 높고 항암제도 잘 안 듣는 악명 높은 놈이라서 항암을 3번만 한다, 6번만 한다, 이런 보장이 없다.

앞일을 알 수 없어 막막하다마는 뭐 언제는 앞일을 알았나? 내일 무슨 일이 있을지조차 우리는 모르고 사는데 멀리 보고 두려워하지 말 지어다.

둘째의 장애를 알고 막막했지만 또 어찌저찌 살아지지 않았던가?

재발도 각오하고 있으니 암과 함께 하는 삶도 어떻게든 또 살아지겠지.

장애도, 암도 다 데리고 살아야 하는 게 내 운명이라면 그래 줘 봐라, 어디. 기꺼이 다 끌어안고 살아주겠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죽기밖에 더 하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어려운 일인 것 같으니까.

내 새끼들이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게 할 수 없으니 나는 이 치료를 받아들인다.

나 혼자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겠지.


입원 첫 날은 딱히 할 일이 없어 넷플릭스에 찜만 해 두고 보지 못했던 드라마를 시작했다.

나 이제 백수 됐으니까 밀린 드라마, 영화, 책 실컷 봐야지. 질리고 질릴 만큼 보다 보면 일하고 싶어질까? 백수 생활 너무 좋아서 돌아가고 싶지 않으면 어떡하지?

이런 배부른 고민도 허세처럼 좀 해 본다.

약하디 약한 암환자가 되었으니 최대한 몸집을 부풀려 센 척으로 으르렁대 보려고 그런다. 불만 있는 사람? 있어도 말하지 말기!!

센 척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여자가 큰 일 하다 보면 암도 한 번씩 걸리고 그러는 거지.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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