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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진공원 Aug 14. 2022

내 인생 최고의 아침식사

아무것도 없는 집이지만 너무 행복해요

부동산에서 가서 이 집을 본 지 6일 만에 이사를 했으니 당연히 침대도, 책상도, 의자도 준비를 못했다.  

집에서 엄마가 쓰던 토퍼를 남자친구 차에 실어서 새 집에 가져다 놨다.

이사 당일에 수저, 밥그릇, 컵, 냄비, 세제, 수세미 등 기본적인 걸 사 와서 부엌에 채워 넣었다.

당장에 먹고 자는 데 필요한 것만 있는 말 그대로 미니멀한 집이었다.



독립 후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뽑자면, 단연 이 집에서 첫 아침식사를 하던 순간이다.

그날엔 새벽 6시에 눈을 떴다. 설레어서 그랬을까?

아니다. 눈이 너무 부셔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대낮처럼 밝아서 내가 엄청난 늦잠을 잔 줄 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동쪽을 향하고 있는 집이라, 아직 커튼을 달지 못한 집안으로 새벽의 햇살이 다 들어온 거였다.

그래도 나는 싱글벙글 즐거워하며 독립의 첫 아침을 맞이했다.



독립 후 첫 아침식사

테이블도 없고, 의자도 없으니 바닥에 앉아서 빈 박스로 간이 식탁을 만들었다. 그리고 어제 근처 빵집에서 미리 사놓은 빵과 엄마가 사놓고 간 오렌지, 물 한잔으로 아침을 때웠다. 정말 이렇게 행복할 수가!

아무것도 없는 방 한 칸의 작은 집이지만, 독립했다는 이 사실이 너무 좋았다.







홍법사 템플스테이


2년 전, 여름휴가로 템플스테이를 간 적이 있다. 거기서 배정받은 방 안에는 한 사람의 몸만 눕힐 수 있는 이불 세트와, 작은 탁상 의자뿐이었다. 그곳에 있으니 마음이 너무나도 편했다. 속세에서의 고민과 번잡함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고 오로지 나와 그 공간을 채우는 여백뿐인 느낌.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잊지 않고 있다. 내가 독립을 한다면 그때 그 방처럼 정말 미니멀하게, 꼭 필요한 것들만 두고 살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사를 하고 며칠간 정말로 템플스테이 하는 것처럼 지냈다. 주문한 테이블과 의자, 소파가 이사하고 한참 뒤에나 도착했기 때문이다. 내 한 몸 누울 수 있는 토퍼만 있으니, 마치 일본의 유명한 미니멀리즘 책에 나오는 방 같았다.



커튼이 없으니 창 밖의 모든 풍경까지 내 집의 일부가 되는 마법도 경험했다. 비워져 있으니 채워지는 것도 있었다.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 걸 가진 내 집이다.

 




나는 한때 충동구매의 대명사였다.

친구의 쇼핑에 따라가면, 물건을 사서 나오는 것은 친구가 아니라 나였다.

과거에 내 옷장은 터져나갈 것처럼 채워져 있었다. 인터넷에서 좋다는 글만 읽고 사서 잘 쓰지도 않는 색조 화장품들이 화장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책장에는 펴보지도 않은 책들이 쌓여있었다.


그런 와중 대학생때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고, 원래 가족들과 살던 집의 반도 안 되는 평수로 이사를 가야만 했다. 새 가구를 사서 이사 갈 형편이 아니었기에 이전 집에 맞는 큰 가구와 짐들을 그대로 이고 왔었다. 답답하게 채워진 집에 있으면 내 마음이 갑갑했고 이런 내 신세가 한스러웠다. 집에 혼자 있을 때면 낡고 좁은 거실에 앉아 대성통곡하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에게 이사 간 사실을 알리는 것이 무서웠다.

"어디로 이사 갔어?"

"집들이에 초대해줘!"

이런 말들 앞에서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어려웠다. 나 조차도 좋아하지 않는 곳이었기에 누군가에게 소개해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다큐멘터리 <미니멀리즘:오늘도 비우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최소한의 물건만 가지고 사는 사람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기분 좋은 떨림을 느끼며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미니멀리즘의 정신에 푹 빠져서 집 안의 물건들을 다 갖다 버리기 시작했다.


그 뒤의 변화는 생각보다 대단했다. 쓸모없이 쥐고만 있던 짐을 하나씩 버릴 때마다 내 마음속 원망이 함께 버려졌다. 심지어 이 집이 조금씩 좋아지기까지 했다. 그 시절 나를 지탱한 것은 미니멀리즘이었다.


하지만 가족들과 같이 사는 집이다 보니 내 마음대로 정리할 수가 없었다. 여전히 작은 집을 차지하고 있는 큰 가구들과 잡동사니들이 눈에 거슬렸다.


이제 드디어 나 혼자 살게 되었으니, 숟가락 하나 휴지통 하나조차 내 마음대로 들이거나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흡족하다. '내 집에 그 어떤 것도 대충 들이지 않겠어!' 굳게 마음먹고, 엄마가 집에서 가져가서 쓰라는 식기류나 수저, 가구들을 다 거절했다. 그리고 내가 고심해서 고른 꼭 필요한 물건들만 들였다.


이곳을 물건으로 가득 채우기보단, 다양한 경험과 나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으로 채워나갈 계획에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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